영생 (eternal life, “life of the age” <= ζωὴ αἰώνιο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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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eternal life, “life of the age” 문자적으로 죽지않음. 혹은 죽었다가 다시 살고, 영원히 삶. 단 12:2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수치와 모욕’으로 비교. 이런 이해가 천국과 지옥, 영원한 상벌관계를 가져왔다.
다른 이해: 은유적인 이해.
성서적 이해. 죽지 않는 삶, 다함이 없는 삶이라기 보다는 (성서에는 이런 이해가 없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the world/age to come)에서의 삶이다. 영생으로 번역된 아이오니오스(αἰώνιος)는 세상, 시대를 뜻하는 아이온(αἰών, Aeon =>Lat. Saeculum)으로부터 파생된 단어다.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 이 세상/시대의 종말(συντέλεια τοῦ αἰῶνος, ‘the end of the aeon/world/age’); “세상에 대한 염려” (αἱ μέριμναι τοῦ αἰῶνος, 막 4:19//마 13:22). 바울 역시 같은 이해를 보인다. ‘이 세상의 지혜’ (고전 1:20, σοφία τοῦ κόσμου; 2:6, σοφία [τῶν ἀρχόντων]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3:19, σοφία τοῦ κόσμου τούτου). (cf. “the time or duration of the world, i.e., time as limited by creation and conclusion”: TDNT 1:202). 곧, 새로운 세상, (다가올) 세대/시대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느님의 개입으로—당시 언어로 ‘하느님의 메시아/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이끄는—새로운 세상은 지금까지의 죄와 불의로 물든 세상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선포하고 있다. 바로 그런 새로운/다가올 세상에서의 삶(生)이 영생으로 번역된 말의 함축된 의미이다. 그렇다면 영생이란 ‘(다가오는) 시대에서의 삶’이란 의미로 바꿀 수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강조하는 하느님 나라/천국 개념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삶이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으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이런 삶은 멸망하지 않는다—영원하다(εἰς τὸν αἰῶνα).
무엇과 상대적인 개념인가? 예) 하느님 나라/하늘 나라는 땅의 나라와 대립이라고 치고, 문자적인 것이 아님.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로마제국과의 경쟁관계에 있으며, 곧 지배체제에 대한 대안/대항 공동체 성격을 드러낸다.
결론
1. 문자적 의미에서, 영생(immortal, 죽지 않음)은 신의 영역이다(창 3:22-24). 비록 인간은 영원한 삶을 염원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모든 고대 창조설화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기에 종교의 기능이 있다.
2. 로마제국이 한 때 영생을 말했다. 자신들 시대/세대가 영원할 것을 믿었다. 보통 시대를 세대로 구분해 이해. (예. “새로운 세상이 오면…,” “너희들 세상에는…”). 다니엘서에서 신상이해 참조. 로마제국의 세대(Saeculum) , 곧 아우구스투스가 일으킨 세대가 (멸망치 않고) 지속될 것을 공포(신상, 화폐, 건축물…)
3. 그러나 로마제국의 영원함은 지배체제에게는 복이 될지언정,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악몽. 현 status quo를 지속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불행. 여기에 대해 로마제국이 아닌다른 세상을 염원함! 이것이 복음서의 용어로 ‘하느님 나라’ 혹은 ‘영생’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펼친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순간, 다른 시대/세대를 산다. 곧 새로운 시대에서의 삶(영생)으로 들어온 것이다. 내가 영원히 삶이라기 보다 (내 주어진 삶이) 영원한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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