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다시하기

신학 다시하기

신학 다시하기(Doing Theology Anew)란?

신학하기(Doing Theology)라는 말이 일견 낯설게 들립니다. 그런데 실은 신학(神學, theology)이라는 말을 풀어쓴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신학(theology = theos + logos)이 1) 신의 생각/이야기/학문; 혹은 2) 신에 관한 생각/이야기/학문 이라고 볼 때, 문제는 인간이 신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말이 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학이라는 이해(Feuerbach), 곧 사고와 초점의 전환입니다. 하느님 이야기에서 우리들 이야기로.

신학하기, 무엇이 문제인가?
Theology, what is the problem?
“그 동안에는 신학을 공부한다(배운다)는 인식을 우리가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무엇에 대해 선생/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도식입니다. 그러나 신학/신앙은 삶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학 공식처럼 외우고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는 학문이 아닙니다. 안다는 것, 지식을 소유한다는 것만으로는 택도 없이 부족합니다. 하느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그 자체로는 귀신과 다를 바가 없다(약 2:19); 도적과 다름 없다(렘 23:30)고 성서기자들은 고발합니다. 남미 해방신학의 도전으로 실천하는 신학, 프락시스(Gr. πρᾶξις, praxis=> practice)를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믿는 대로 살고 있는가?”
신학 다시하기
Theology Again
“왜 신학하기를 다시하는가? 기존의 신학하기가 내게 긍정적 모습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실존적 물음(아픔)에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한다/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사교모임, 취미활동과는 사뭇 다릅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보험, 투자와도 다릅니다. 오늘을 의미있게, 책임있게 살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내 삶을 all-in 하도록 만드는 삶의 디자인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신학하기의 본질이며, 우리가 쓰는 말로 신학 다시하기입니다.”
이런 이해는 어디서 오는가?
Where does this understanding come from?
“성서/전통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성서는 질문하지 않으면 답하지 않습니다. 미드라쉬(םדרש)라는 말의 기본 의미는 '묻다, 질문하다, 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생을 구하는 어떤 율법사에게 예수는 말합니다. 성서를 어떻게 읽느냐?(눅 10:25-26).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아무 답도 얻지 못합니다. 답(성서)이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이 없음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신학 다시하기의 출발은 나를 들여다 봄에서 비롯됩니다.”
  • 1. 사색에서 행동으로
  • 2. 수동적 배움에서 능동적 삶으로
  • 3. 주입식 교육에서 마춤형 신학하기로
  • 4.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 5. 남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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