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오래 전 신문에 [불새]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을 때이니 아마도 30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출판박물관장으로 계신
K씨가 당시 출판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나를 만나자 자신이 열렬한 애독자라고 말한 다음 소설의 주인공이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내게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우연한 질문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나는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K씨의 지적처럼 내가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연극에서 배우가 상대방없이 혼자서 하는 대사를 독백이라 하고, 한 사람의 배우가 모든 역을 혼자 맡아 하는 것을
모노드라마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혼잣말을 하는 일인극의 배우처럼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혼잣말을 많이 하는
경우는 어느 한 순간 낯 뜨거운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거나 기억조차 하기 싫은 비굴하고 옹졸한 내 자신의 치부를 떠올릴 때다.
그럴 때면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아이고, 미친 놈." 망할 자식!"하고 욕설을 중얼거린다. 그 욕설은 내가 또 하나의 나를 향해
던지는 일종의 야유다.
젊은 시절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새벽에 술이 깨어 정신이 말짱해지면 술 취해 객기를 부리던 지난밤이
떠오르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가래침을 뱉듯 자신을 향해 저주의 혼잣말을 던지곤 했다.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이 미친 놈아, 이 사기꾼아. 나가 죽어."
그러나 모든 혼잣말이 이렇듯 나 자신을 혐오하는 자기 비하의 욕설만은 아니다. 1994년 초여름 중앙고속도로에서 달려오는 미군 차와
정면으로 부딪친 순간 문을 열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몸을 굴려 탈출했을 때,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무서워하지 마."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을 비난하는 욕설보다 오히려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혼잣말이 더 많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쓸데없는 걱정에 휩싸이며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린다. 크고 작은 난관이 우리를 괴롭히고 걱정거리가 우리를 찌른다.
그럴 때면 나는 중얼거린다. "미리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모든 게 잘 될 거야."
간혹 절체절명의 궁지에 빠질 때도 있다. 1990년대 말, 백두산에 촬영을 갔다가 촬영 팀과 더불어 깎아 지른 수직 벽을 무모하게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무거운 장비를 지고 미끄러운 경사면을 내려가는데 자칫하다가는 추락사할 것 같은 본능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그 순간 나는 주문처럼 혼잣말을 했다. 특히 급할 때는 내 자신의 이름을 직접 부른다.
"인호야, 정신 차려. 조심해. 괜찮아. 인호야. 두려워하지 마."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상대방 없이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은 해리 현상으로 분열증의 중요한 증상이다.
그러나 절박한 순간 그냥 단순하게 "괜찮아, 걱정 마."라고 용기를 주기보다 출석을 부르는 선생님처럼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를 격려하면 기적과 같은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때에 나는 내가 아니라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신 절대의 나, 즉 하느님일지도 모르고 이때의 최인호는 가면 쓴 가짜의 인호가 아니라,
내 인생의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실재하는 진짜의 최인호,즉 참나일지도 모른다.
지난 여름 불면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밤이면 유령처럼 일어나 아파트 앞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불면에 시달리는 내 자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의사는 중독성이 없으니 안심하고 먹으라며 흰 빛깔의 수면제를
처방해주었지만, 그 조그만 약에 잠을 저당 잡힌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나는 잠을 못 자는 고통보다는 잠이라는 무거운 숙제에 전전긍긍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혼잣말이 더욱 늘어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
밤에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인호야, 걱정 마. 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은 마지막 일주일간 한숨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잖아. 바로 용맹정진을 한다고 생각해.
괜찮아. 별것 아냐." 나는 느낀다.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면 김춘수의 시[꽃]처럼 나는 나에게로 와서 잊혀지지 않는
꽃이 되는 것을. 그리고 신비하게도 힘과 용기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따뜻한 위로와 더불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운동처방학을 전공하는 윤기윤 교수는 운동선수들에게 세 가지 종류의 혼잣말 훈련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지켜본 후 흥미로운
논물을 발표했다. 혼잣말의 종류에는 '지도적 혼잣말'과 '동기적 혼잣말', '긍정적 혼잣말' 등이 있는데 지도적 혼잣말은 '천천히'
혹은 '침착하게' 같은 교훈적인 것이며, 동기적 혼잣말은 ' 이번이야말로 최고의 기회야,' '드디어 때가 왔어' 같은 심리학적인
동기부여를 가리키며, 긍정적인 혼잣말은 ' 좋아, 할 수 있어', ' 난 내 자신을 믿어'와 같은 말인데 마음속으로 외우기보다는 실제로
입 밖으로 드러내어 혼잣말을 하는 실험대상이 그렇지 않은 상대보다 월등히 실제 행동과 학습효과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중국의 당나라 때 절강성의 서암사라는 절에는 사언이라는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화두로 유명한 암두의 제자였다. 사언은 스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치둔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불린 데는 어느 날 공양 초대를 받아 신도 집에 갔을 때 주인이 유리와 구슬로 된 염주알을 바구니에 담아 각자 골라
가지라고 했던 데서 비롯되었다. 사언은 다른 스님들이 다 고른 후 마지막에 남은 가장 볼품없는 것을 집어 들고
"이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든다."라고 흡족해하며 '바보선사'라 불리게 된 것이다.
사언은 아침에 일어나면 판도방 앞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아." 그러고 나서 사언은 말했다. "네." "정신 차려라." "네." "앞으로도 속지 말아라." "네."
사언의 자문자답은 자기 속의 자기야말로 만유의 근원적인 한 물건이자 본질 이전의 진아(眞我)임을 개닫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경책한 벽력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나는 요즈음 내 속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믿는다.
나는 이제 내 인생의 주인공인 오직 나만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단 한 사람의 독자면 충분하다. 그 독자로부터 인정받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웰만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은 나 자신이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벗도 나 자신이다. 나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도 나 자신 속에 있으며
나를 해치는 무서운 칼날도 나 자신 속에 있다. 이 두 개의 나 자신 중의 어느 나를 좇는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요즘엔 혼잣말이 부쩍 늘었다. 나는 다정스럽게 내 이름을 부른다.
"인호야."
소리 내어 나는 대답한다.
" 왜 불러."
"나와 노올자."
"그으래."
나와 나는 요즘 어깨동무를 하고 날마다 함께 산에 간다. 나는 내 친구가 너무 좋다. 우리의 우정은 천지가 갈라지기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고 죽음도 우리의 우정을 갈라놓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씨동무인 나를 사랑한다.
_ 인생_ 최 인호 지음 ;<여백>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