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

17일에 못다 한 말 - 밤하늘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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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하나 됨"을 주제로 한 설교에서 이야기하려다가 시간이 안 되어 하지 못한 말이 있었습니다.

류영모 선생님의 십자가 풀이였지요.  토론 시간에 잠깐 언급한 것 같지만, 그것과 관련되어

6월25일 <서울신문>에 냈던 칼럼 옮겨 놓겠습니다.  박소영 목사님이 가끔씩 글을 올리라고 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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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窓]  밤하늘의 십자가/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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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하늘에는 유독 붉은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 이런 십자가를 볼 때마다 물론 그것이 무엇보다 교회존재와 위치를 알리는 광고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간혹 그 십자가의 크기에 따라 교회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교회의 규모를 선전하는 선전판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며칠 전에 방문해 본 한반도 서쪽 끝에 위치한 전남 신안군 홍도(紅島)의 밤하늘에도 십자가 둘이 보였다. 이 경우 교회의 존재와 위치를 말해 주는 것 외에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을 위해 등대의 역할을 겸하기도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십자가의 뜻이 이런 것만일까? 물론 정통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십자가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그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 사형 집행을 위한 형틀로 쓰이던 십자가를 이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교회 지붕 꼭대기에다 붙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향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라고 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이 바로 나 스스로를 부인하고 나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대신 십자가 아래에다 바퀴를 달아 ‘끌고’ 가거나 심지어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듯 십자가를 ‘타고’ 가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상적으로 말하면 십자가는 바로 나를, 나의 헛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하는 훌륭한 자기 비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시 묻는다. 십자가의 뜻이 이것만일까? 이런 뜻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밤하늘의 십자가가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에도 들어옴으로써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상징이 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우리 민족이 배출한 큰 스승 다석 류영모(1890~1981) 선생은 십자가를 한국의 전통사상인 ‘천지인(· ㅡ l) 삼재(三才)’로 푼다. 사람(l)이 땅(ㅡ)을 뚫고 위로 솟아 하늘(·)과 하나 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탁견이다. 사실 비교종교학적으로 볼 때 십자가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 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십자가의 본래 모양은 수직수평의 길이가 같았다. 수직과 수평의 조화, 이른바 ‘양극의 일치’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뿐 아니라 우리가 가까이서 보는 태극, 만(卍)자, 삼각형을 아래위로 겹쳐 놓은 유대교 다윗의 별,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물고기(ixthus) 표시도 모두 양극의 조화와 상생과 화합과 통일을 지향하는 ‘하나 됨’에 대한 이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심지어 그 십자가 밑에서, 십자가의 근본 뜻인 ‘하나 됨’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속 분열과 분쟁만으로 치닫는 모순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이제 밤에 눈이 가는 곳마다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그것이 무엇보다 ‘하나 됨’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직접적으로 십자가 밑에서 살아가는 교인들의 하나 됨, 나아가 종교 간의 하나 됨, 사회 계층 간의 하나 됨, 지역 간의 하나 됨, 결국은 남북이 하나 됨 등 하나 됨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원을 밝혀 주는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하나 됨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밤하늘의 십자가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2011-06-25  26면

댓글목록

박소영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소영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탁견이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됨의 상징.

바퀴 달아 끌고다니는 .... 타고 다니는 ... 십자가, 냉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표현이 넘 좋군요. 

 

오박사님

저희들이(새길교회) 하고 싶은  일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기독교 용어들의 재해석, 그것도 비 기독교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

 

회개는 옛날에 지은 죄에 대한 반성만이 아니고, 메타노이아 - 의식(생각) 바꾸기

십자가는 믿고 천당가는 표시가 아니고 하나님의 상징 등등. 

 

교회 안에서 너무나 익숙한 용어들이지만 잘못이해되고 있는 용어들을 재해석해서

기독교인들은 참된 자유를 얻게 하고

비 기독교인들에게도 말되는 종교로 다가갈 수 있는

작은 기독교 용어 해설집 과 mission statement.

 

도와 주세요.

  

밤비마마 Susan H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밤비마마 Susan H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날 골프로 설명하신 비유가 맘에 남습니다.. 골프 좋아하시는 저희 아버지께 옮기려고 했는데 제가 머리가 나빠서 디테일이 기억이 안나네요...내가 골프공과 하나가 되는것? 골프공이 홀과 하나가 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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