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폐광산 십자가형 사건: 종교적 광신과 파편화된 시민사회 (펌)
본문
socio1818.egloos.com/4034057
경북 문경의 한 채석장에서 50대 남성이 십자가에 못박혀 사망한 채 발견하였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뉴스 전문). 성경에서 전해지는 예수의 사망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채로 사망하였는데, 방송 뉴스를 처음 보았을 때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사교(邪敎)집단이나 광신도의 행각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앞서 링크한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니 자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저러한 광신적 행위에 대한 조력자가 최소 1명 이상 추가로 존재하며, 그가 아직 사회를 활보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위협적이긴 매한가지이다. 그나마 엉뚱한 사람을 붙잡아 또 십자가에 매달 염려는 줄어들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기사를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미국드라마 House M.D. 의 시즌 7 에피소드 8 인 "Small Sacrifices" 이다. 해당 에피소드에는 딸의 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매년 자신을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는 남자가 등장하며, 하우스 박사에 의해 자신의 믿음에 대한 반증사례가 제시되어도 신의 자비를 찬양하며 신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이번 사건이 자살이라면 이들을 모두 미친 광신도라고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며, 나 역시 그러한 판단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들의 정신병적인 정신세계 이상으로 흥미로운 것은 House M.D. 에 등장하는 가상의 사례나, 어제 보도된 한국에서의
충격적 사건이나 모두 당사자가 사회적 하층계급이라는 점이다. House M.D. 의 광신적 환자는 가난한 노동자이며, 채석장 십자가형의 주인공은
뉴스에 보도된 바에서 알 수 있다시피 50대의 택시기사이다. 중세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러한 순교에 대한 욕망과 편타고행은 뒤르켐 식으로
묘사하자면 개인이 '과도하게' 사회에 통합되어 있을 때, 사회적 통합이 너무 강할 때 사회의 가치를 개인의 가치보다 더 중시할 때 일어나는
이타적 자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경우에 '사회' 란 정치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 귀속감을 느끼는 종교공동체 혹은 영적인 상상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들은 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었으며, 그것에 통합되기 위해 희생까지 불사하였을까?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고 본다. 상당수의 인간은 개인적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공동체 내에서의 인정과 귀속감을
어느정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하층계급은 학연과 같은 모든 형태의 사회자본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으며, 출신에 근거하지 않는 자발적
결사체들 역시 하층계급 배제적이기는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갈 곳은 종교집단밖에 없지만(남한의 시민단체들은 철저히 중산층
중심적이며, 정당들 역시 소속감을 전혀 제공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손낙구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하층계급에서는 무교(無敎)의 비중이 가장
높다. 결국 이들에게 있어서 '사회' 로 기능하는 것은 중상층 중심의 안정적인 사회자본의 재생산지로서의 제도화된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상상의
소속감과 사명감을 제공해주는 개인적인 종교적 광신에의 투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이 아니라, 상상 속의 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가설일 뿐이다. 학술DB에서 확인한 바로는 2000년대에 들어서 계층과 종교성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밀한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90년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상층계급이 하층계급에 비해 개인적 경건생활과 외형적 의례활동 모두 열성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계급이 낮고, 전업주부이며, 순복음교단의 경우 아노미가 강할수록 근본주의적 경향이 강하다는 점 역시 확인되었다. 이러한 상반되어 보이는 결과를
하나의 틀 안에서 일관적으로 해석한다면, 일반적으로는 상층계급에 종교성이 강한 인구의 비중은 높지만, 냉소를 극복하고 종교를 선택한 하층계급은
근본주의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요컨대 절망하는 하층계급이 간신히 잡은 썩은 동아줄을 버리지 못한 채, 그것을 아리아드네의
실로 여기며 파멸적 위안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끝에는 이 세상 고난을 초탈한 미궁의 출구가 아니라 미노타우루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사건 자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 보아야 알 수 있겠으며, 당사자가 하층계급인 것 역시 단순한 우연일 수
있다(우리는 옴진리교 사건 등을 통해 고학력의 상층계급 역시 얼마든지 이상한 것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확인하였다. 그러고보니
대형교회만 가더라도 정신나간 고학력자들이 득실거리는구나). 개인의 선천적 뇌 이상으로 인한 정신병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광신적 조류가 제도권 기독교의 주류 흐름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고의 왜곡이 하필이면 이러한 종교적 광신의 형태로
발현이 되는 것은 분명 현재 한국의 시민사회와 제도권 종교가 포섭하지 못하는 흐름이 종교를 동아줄로 택하여 폭주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남한 시민사회는 철저히 중산층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헤게모니에의 선별적 포섭으로 인해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운동' 은
여전히 불온시되고 있으며, 합법성을 내세우는 '시민운동' 은 후원자와 전업활동가 중심의 대리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에 자발적 결사의 소속감을
결코 제공할 수도 없을뿐더러 주요 이슈들 역시 철저히 중산층 중심적이다. 실제 남한 시민단체들의 회원에 대한 조사들은 화이트칼라 계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제도권 개신교계는 소위 개독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철저히 타락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 주류
교회사와 대형교회 목사들의 과거 행적을 보자면 그야말로 악취로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다(자세한 내용은 엔하위키의 개독교 역사 항목을 참고하도록 하자). 남한의 주류 교회들의 설교는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표현을 빌리자면
"싸구려 은혜", 즉 '회개' 를 대중화 함으로써 회개를 마치 시장의 상품과 같은 것으로 전락시킨 것에 불과하다. 또한 교회의 네트워크는 철저히
계급적으로 편성되어 있기에 하층계급은 결코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일정 이상 인정받기가 어렵다(몇년 전 대학원 형에게 듣기로는 일부
대형교회에서는 결혼을 할 때 양가 부모의 교회 직책을 비교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진다고 한다).
문제는 남한의 교회들이 이러한 세속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적 신앙을 베이스로 한 천박한 싸구려 종교장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싸구려 은혜' 를 팔기 위해서는 은혜의 구매 요인을 높이는 조건이 필요한 법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라는 시장에서 상품거래에 참여할
자원을 지닌 사람들은 근본주의적 신앙에 대한 과도한 몰두보다는 자신의 자원을 팔아 교회 내에서의 지위나 정신적 자위를 얻는 행위를 하지만(그리고
이는 시간과 물질적 자원을 바친 것에 대한 충분한 실질적 보상으로 작용한다), 하층계급은 근본주의적 신앙만을 흡수하고 종교시장에서의 거래에는
참여를 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즉,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근본주의적 경향의 설교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종교장사의 세속성으로 인해 중화작용이
일어나지만(혹은 경건한 사생활과 세속적 성공을 동시에 바라는 거의 정신병적 분열이 일어난다), 하층계급은 그야말로 인민의 아편만을 맞는 꼴이다.
성직자의 종교장사 편의를 위해 자유주의 신학을 탄압한 댓가는 인민의 아편, 혹은 상층계급의 매춘부로서의 종교이다. 이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풀어놓은 채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이번 사건과 같이 극단적인 광신이 발현되는 것은 계급적으로 분절되고 참여가 파편화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그리고 근본주의적
종교관을 제공하면서도 공동체에의 시민권은 부여하지 않는 개신교계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소속감을 잃은 개인이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결국 영적인 상상의 공동체 뿐이다. 타국과 비교를 해보지 않아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남한의 개신교는 유달리
광신적-근본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그만큼 물의 역시 많이 일으키는 편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정당의 사회적 기반
확보를 통한 참여의 확대, 그리고 자발적 결사체들의 전국적인 참여적 네트워크의 활성화, 기성종교가 제공하는 교리의 합리화가 함께 이루어져야만이
근본주의적 광신에 빠질 유인과 동기를 차단하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남한은 헌법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반(反)자유주의적 선동의 온상인 신학교들과 개신교 집단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특혜를 베풀고 있는 실정이니 만큼(정확히
말하면 종교집단 전반에 대해 특혜를 베풀고 있다) 이번 사건의 수사결과에 따라 특혜를 모두 철폐하고 대형교회들에 세무조사 등의 철퇴를 가할
필요가 있다. 사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과연 어떠한 경로로 근본주의적 광신을 지니게 되었는지에 대한 치밀한 수사가 필요할
것이다.
>>> 어제 이 엽기적인 사건 보고 놀라신 분들 많으시죠?
누가 그 사건을 사회구조 문제로 분석했는데 너무 훌륭한 글이고
우리교회의 나아갈 방향과 맞물려 생각해 볼만한 글인거 같아서 같이 생각해 보자고 올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