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은 왜 예수를 따랐는가?--William R. Herzog II
본문
몇년 전에 예수아카데미(www.jesusacademy.com)에 번역해 올렸던 글이다.
우연찮게 내가 번역한 글이 인터넷 상에 떠도는 것을 보았다. 번역자 이름은 빠진 채...
번역자에게도 저작권(?)이 주어져야 한다면, 이 참에 밝히고
또 사라져 없어진 자료도 여기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오랜 파일을 찾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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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William R. Herzog II, "Why Peasants Responded to Jesus;" in Richard A. Horsley, ed., Christian Origins [A People's History of Christianity, Vol. 1; Minneapolis: Fortress, 2005], 47-70의 본문을 완역한 것이다. 다만 책 여백에 있는 삽화, 사진 및 설명문은 기술상의 이유로 옮기지 않았으며, 성서인용은 본문 속으로 집어넣었다. 저자 헤르쪼그는 뉴욕에 있는 Colgate Rochester Crozer Divinity School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Parables as Subversive Speech: Jesus as Pedagogue of the Oppressed [1994], Jesus, Justice and the Reign of God [2000], Prophet and Teacher: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ical Jesus [2005] 등이 있다.)--박원일 옮김
농민들은 왜 예수를 따랐는가?
윌리암 R. 헤르쪼그 II
서기 1 세기 팔레스타인에서는 많은 대중적 운동들이 일어나고 사라졌지만, 그 어느 것도 운동 주창자의 사후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예수운동은 이런 규칙 속에서 주목할 만한 예외에 해당한다. 왜 그랬을까? "아래로부터" 역사 혹은 대중의 역사 쓰기 연습의 하나로, 이 장(章)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의 한 단면을 탐구하고자 한다. 곧 예수의 비유는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예언자적 교사의 삶과 행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농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겪는 점진적인 스트레스를 분명히 표현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며, 그에 대응하는 실천 가능한 몇 가지 방법을 밝히도록 만들었다. 그의 잊지 못할 구전(口傳)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처한 상태의 원인을 깨닫게 하여 풀어나가야 할 문제와 취해야 할 행동을 제시토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비유는 그의 말씀을 들은 농민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었으며, 그의 사후에도 은밀히 이어지는 운동―그의 삶과 가르침 속에 발견되는 생명력 있는 주제들을 영구히 기억하는 운동―에 연합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가? 그들의 지도자가 십자가형을 당한 후에도 흩어지지 않고 농민들이 운동을 일으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예수운동에 가담하고 이를 전파하려고 유대와 갈릴리 각지에서 모인 농민들이 이끌렸던 매력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보면 (앞으로 쓰고자 하는) 대중의 역사와 이 모든 사건을 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확연히 알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은 이 운동이 예수 사후(死後) 오순절의 결과로 가정한다. 우리가 여기서 전개하고 있는 관점에서 보면, 예수운동은 예수 생애 동안 갈릴리 마을에서 이미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예수운동은 그의 부활의 결과로 일어났고, 바로 이런 부활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예수 운동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 글이 제시하는 바로는, 예수운동은 갈릴리에서 그의 예언자적 삶과 가르침의 결과로 일어났으며, 이는 당시 농민들과 주위의 다른 지방의 가난한 이들이 겪었던 압제적인 상황에 따른 결말이었다.
여기서 던진 질문에 일부만 답한다 할지라도, 다음의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첫째, 로마인들과 그들 대리통치자들이 어떻게 갈릴리와 유대의 농촌생활에 점진적인 경제적, 사회적 압박을 가져왔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어야 한다. 둘째, 엘리트 지배계급과 그들의 고용인들이 대중통신을 관리하고 읽고 쓰는 일을 독점하다시피 했음으로, 이런 "침묵의 문화" 속에 잠긴 시골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를 탐구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삶과 작품을 통해 예수와 같은 인물을 이해하는데 배경이 되는 정치적, 문화적 유사성을 그려내고자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방법과 가르침을 채택한 운동을 발생시켰음으로, 프레이리와 그의 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창시자와 운동, 예수와 예수운동 사이를 연결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유대와 갈릴리 사회: 분수령
지배자와 피지배자
대중의 역사를 파헤치려는 우리의 노력이 그들의 지배자들의 활동을 분석함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 다소 얄궂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난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대처해야 하는 상황을 지배자들이 만들었다.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분수령으로 경계가 그어진 사회 속에서 살고 일했다. 이 분수령은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통제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로마는 대리 왕(client king) 헤롯 안티파스를 통해 갈릴리와 그 주변을 다스렸으며, 그의 아버지 헤롯 사후에 갈릴리를 맡겨 통제케 하였다.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은 서기 6년 유대 지방을 로마 행정구역에 할당한 후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관료들에게 대리 통치를 시켰다. 그들은 로마 장관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또한 로마 장관들은 시리아에 주둔하는 지방 총독에 종속되어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로마 장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서기 26-36년 사이에 다스렸으며, 그의 통치는 서기 18-36년 사이 대제사장을 지낸 가야바(Caiaphas)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이 모든 사실은 팔레스타인이 "폭력 정책"으로 다스리는 "제국적 상황" 속에 처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 관료들이 갖는 권력은 성전과 희생제사 제도를 통제함에 기인하며 이는 나름대로 독특한 문제를 야기했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지배계급은 갈릴리가 정치 경제적으로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구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릴리인들로부터 십일조와 성전과 제사장에게 드리는 헌물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결과, 로마에 조세를, 헤롯 안티파스에 세금을, 성전에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야하는 갈릴리인들에게는 과대한 요구에 정신이 몽롱했을 것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대제사장들 사이에 성전을 수호한다는 그들의 임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충돌했다는 사실이다. 제국의 속박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한 해방의 하느님을 기념하는 순례 축제기간 동안 이 딜레마는 특히 그 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이런 축제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은 로마와 합작해 자신들은 권세와 특혜를 영구 유지하려는 매국노에 불과했다. 실제 대제사장 가족들이 점차 백성들을 극도로 착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탈무드에서 잘 알려진 애가(哀歌)는 이들 대제사장 세대들의 매국적 행위에 대한 대중의 관점을 담고 있다.
보에투스(Boethus)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지팡이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안나스]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속삭임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카트로스(Kathros)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펜촉(pens)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비아비의 아들 이스마엘(Ishmael ben Phiabi)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주먹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은 대제사장들이요, 그들의 아들들은 회계담당자요, 그들의 사위들은 성전 관리인이요, 그들의 시종들은 곤봉으로 백성들을 때림이니라. (b. Pesahim 57a; t. Menahot 13:21)
만일 이 애가가 1세기 당시 역사적 움직임과 사회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면, 이는 폭력(지팡이, 곤봉, 주먹), 빚 문서와 "상류전통"(펜촉), 성전 직위와 직무의 통제(대제사장, 회계담당자, 관리인), 그리고 소문과 뒤에서 험담하기(속삭임) 등이 로마인 대군주(大君主)를 섬기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쓰였음을 보여준다. 로마 정책과 행동이 마을 농민들의 지방 문화와 부딪칠 때, 지방 권력자들은 거의 언제나 로마인들과 편을 짜고 그 땅의 농민들을 저버렸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관습은 단지 대리왕과 대제사장들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만 증가시켰을 뿐이다. 정치적 상황은 폭발 직전이었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긴장은 널리 펴져있었다. 악한 포도원 소작인 비유(막 12:1-12)에서 우리는 지배자들을 문제의 일부로 여겼던 당시 농민들의 "아래로부터" 신학하기를 엿볼 수 있다.
도시의 부유한 자와 지방의 가난한 자
팔레스타인의 분수령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은 지형적일 뿐 아니라 또한 정치 경제적이었다―집중적으로 도시의 부유한 자와 지방의 가난한 자, 부자와 나사로(눅 16:19-31)를 나누는 커다란 간격. 도시와 지방 사이의 관계란 근본적으로 약탈과 착취의 성격을 띠며, 우선적으로 세금과 공물의 형태를 취했다. 비록 공물과 세금의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농민 수확의 25-30 프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계산으로든, 로마에 조세를, 헤롯당원에 세금을 또 성전에 십일조를 바쳐야하는 갈릴리인들에게 이 숫자는 특히 억압적이었다. 조세를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지배체제이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생산에 참여한 이들로부터 제일 큰 몫(소위 잉여농산물)을 취했다. 세금과 공물 납부에 저항하는 이들은 폭력적인 보복을 당해야 했다.
갈릴리 임기 초기에, 안티파스는 셉포리스을 짖고 또 다른 도시를 갈릴리 해변에 건축한 후, 자신의 후원자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리며 이 도시를 티베리우스라 명명했다. 이 도시들은 작전상 중요한 자리에 위치했는데, 그 결과 갈릴리 모든 마을이 도시로부터 도보로 하루 이내 거리에 있게 되었다. 안티파스의 도시 건축은 마을 사람들에게 특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혔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건축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이 요구되었다. 또 마을 가까이 지배계급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농민들이 지배계급의 관리 하에 보다 효율적으로 종속되었음과 소작료 및 세금의 강제모금을 의미한다. 이렇게 갈릴리 농민들은 점차 증가하는 경제적 스트레스에 놓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작물을 심기 위해 빚을 지게 되고, 이런 행동은 고리대금업을 통해 토지의 상실을 낳는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빚과 토지상실이라는 이런 일련의 순화과정이 많은 형태의 사회불안 속에서 대중적 (농민)운동을 낳았다. 당시 유대사학자 요세푸스는 이런 운동들을 얼핏 보여준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던 시기에(서기 26-36), 무명의 사마리아인이 추종자들을 모아 그리심 산에 올라, 거기에 "모세가 숨겨두었던 성물 그릇"을 캘 것을 약속했다(Ant. 18.85-87). 빌라도는 군대를 파견해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흩어버리고, 그 지도자를 처형했다. 약 10년 후, 듀마스(Theudas)라 칭하는 인물이 나타나 한 무리의 추종자들을 요르단으로 이끌어 강물을 갈라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이 위대한 이적을 보이기 전에, 로마 군대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더러는 포로로 사로잡고, 듀마스를 참수(斬首)하여 보임으로 다른 사람들이 단념하여 그의 길을 따르지 못하도록 했다(Ant. 20.97-98). 몇 년 후, "이집트에서 올라온" 한 예언자가 수천 명의 일반 사람들을 이끌고 올리브 산에 이르는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자신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이라 약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그는 시민공동체를 다스릴 것이라 했다(War 2.262-63; Ant. 20.169-72).
분명 이들 대중적 인물들은 불만이라는 깊은 우물에 접촉한 것이다. 결국 구원이라는 약속은 억압과 절망을 암시하며, 성스러운 그릇을 보이겠다는 약속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오염된 그릇에 대한 불만을 제시한다. 과거에 있었던 위대한 이적을 되풀이 하려는 노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경험을 하기 전 이집트에 노예로 살았던 것처럼 당시 사람들이 속박의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런 대중적인 운동들은 사람들이 지도자를 찾고 있었음을 가리키지만, 그들은 헤롯의 가문이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서 그런 통솔력을 구하지는 않았다.
이런 행위는 또한 갈릴리와 유대에 정치 경제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농민들은 호구지책을 잃거나 그와 유사한 어떤 중요한 보호막을 상실하지 않는 한 권위에 대해 직접 도전하지 않는다. 보통 농민들은 그들의 호구지책만 안전하다면 착취를 감수한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小)자작농은 (빈부의) 분수령의 가난한 측면에서 지방 계급제도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민들이 보통 빚이라는 통로를 통해 자신들의 토지를 상실하게 되면, 그들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소작인이 되어 지배계급의 인물과 계약관계를 맺으며, 악한 포도원 소작인 비유처럼 소작인으로 사는 것이다(막 12:1-12). 그들은 마을과 친족들과의 유대관계를 잃었지마는, 여전히 토지와 연결되어 있다. 만일 그들이 소작인의 위치마저 잃게 되면, 포도원의 노동자 비유에 등장하는 일꾼처럼 하루벌이 노동자가 된다(마 20:1-16). 이들은 땅도 없어 상처를 입기가 쉽다.
지방의 계급사회에서 농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상실하게 되는 두 개의 실마리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에 농민들은 가장 처절하게 저항하게 된다. 스콧트(James C. Scott)가 진술하듯이, "아래로 떨어지기 쉬운 농민들은 그들이 가진 기존의 안정보장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처절하게 저항할 수 있다." 첫 번째 실마리는 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할 때 일어난다. 자신들의 토지와 마을생활의 안전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사회)운동을 형성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다 절망적인 문턱인 두 번째 실마리는 "의존 관계를 통한 호구지책의 확실성이 무너지고" 소작농으로서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 아닌 하루벌이 노동자의 위험한 생활수준에 이를 때이다.
이집트 속박으로부터 해방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던 옛 전통에 초점을 둔 이 대중 운동들은 농민들이 그들의 토지 및 땅과 관련된 약속의 버팀목을 상실하고 있었음을 제시한다. 바로 이런 상황들이 농민들을 요세푸스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대중 운동으로 내 몰았다. 농민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보다 덜 위험한 약자의 무기"를 사용함으로 "농민들과 그들로부터 노동, 식량, 세금, 소작료 및 각 종 이자를 취하는 자들과 사이에 평범하지만 꾸준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예수의 많은 비유가 보여주듯, 갈릴리와 유대 농민들은 이런 위험에 처해 있었다.
전통(Traditions)과 대본(Transcripts)
고급 농경사회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인류학자들이 칭하는 "상류전통" (great tradition)과 "하류전통"(little tradition)인데, 이는 보통 읽고 쓰기와, 말하기 능력에서 나타나는 분리(경계선 긋기)와 일치한다. 소수가 거의 대부분을 취하고 다수가 거의 아무 것도 갖지 못하는 1세기 갈릴리와 유대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극적이며 철저한 불평등은 정당성과 어느 정도의 신비화 작업을 요한다. 이런 이유로 지배자들이 그들의 관념적 세계관을 자신들이 다스리는 농민과 고용인들에게 주입시키기까지는 어떤 식의 지배체제도 온전하지 못하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단은 일종의 "상류전통" 혹은 "위로부터"의 역사를 만들고 선전하는 일이다. 도시 지역에서 출발한 이 전통은 문학작품을 통해 형성되는데, 왜냐하면 구전(口傳)의 비문학적 문화권인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활자화된 문서란 권력과 권위의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상류전통은 여러 형태를 통해 그 후견인들을 사로잡는데, 그들은 유일하게 이 전통에 가까이 하여, 그 울타리를 통제하며, 해석과 적용을 결정한다. 갈릴리와 유대의 경우 예루살렘 성전의 소수의 성직자들, 그들의 가신(家臣)인 서기관들, 바리새인과 같은 정치적 파당이 이런 임무를 담당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상류전통은 비록 토라 이야기를 읽을지라도 시골 농민들을 지지하거나 그 권익을 보호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러했음으로, 사회계급 계층이 아래로 향할수록―엘리트 계급에서 가신으로, 기술직 고용인으로, 농민으로―상류전통은 그 힘을 읽고, 대항(對抗)전통인 하류전통의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농민 사회의 마을, 읍, 부락에 중심을 둔 지방 특유의 형태를 지닌 하류전통은 사회 계급제도에서 지배자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이런 문화적, 지형적 거리감은 하류전통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스콧트(Scott)가 지적하는 대로, 이 하류전통은 "농경사회에서 농민들이 귀하게 여기는 독특한 패턴의 신앙과 행동"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 전통은 농민들이 상류전통을 자신들의 생애와 문화를 지지하고 보존하는 한도 내에서 선별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하류전통은 아래로부터 본 역사를 담고 있다. 마을 공동체적 지혜의 보고(寶庫)를 공급하는 외에도, 이 하류전통은 소수 지배계급의 상류전통이 부과하는 세에 항거할 수단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이 아무리 힘써 노력할지라도, 자신들의 세계관을 농민들이 억지로 따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스콧트가 말한 "절충된 종속"을 실행할 방법을 찾아내는데, 이 협상을 통한 종속은 지배자들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헤게모니는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니다.
비록 처음에는 상류와 하류 전통이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하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 두 전통은 종종 같은 주제를 다른 관점에서 다룬다. 예루살렘 대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이름의 시조로 여기는 반면, 대중적인 이스라엘 전통은 아브라함을 (그런 의미로) 합법성을 부여하는 인물로 보기를 거부한다(눅/Q 3:9).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아브라함을 빈민의 구원자로 그린다. 마찬가지로, 이 두 전통들은 모세의 언약, 안식일 전통, 출애굽과 유월절의 의미, 성전과 십일조 그리고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대제사장들에 대해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 두 전통은 공통의 기반을 논하고, 자신들의 독특한 강조점을 만들어 내어, 갈릴리와 유대에서 신학적, 이데올로기 논쟁을 위한 틀을 제공했다.
엘리트 계급의 상류전통과 땅의 백성들의 하류전통은 어찌 보면 똑같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으나, 피지배자보다 지배자들을 유익하게 하는 권력 관계에서 이런 경우는 쉽지 않다. 사실 압제당하고 있는 그룹의 하류전통의 반향(反響)을 "들을 귀"와 "볼 눈"이 있어야 한다. 실제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정치적 환경에서 우리는 세 개의 다른 종류의 정치적 담화를 찾을 수 있다. 첫 째는 지배자와 지배 계급의 눈으로 본 사건과 배열을 담은 "공개적 대본"(public transcript)으로, 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간에 일어나는 공공연한 접촉을 기술하는 속기법"이며, 다른 말로는 "지배 엘리트 계급들이 스스로 보여 지기를 원하는 자화상이다." 포도원의 일꾼들 비유의 마지막 지주의 연설(마 20:1-16)에서 우리는 이런 자화상의 예를 볼 수 있다. 지배자가 통제하는 공식적 대본은 현(現) 정치 체제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정당화시키는 범위 내에서 상류전통을 포함한다. 엘리트 계급이 작성한 대본에 따라 정치적 극장 무대에서 억지로 배역을 맡아야 할 때, 힘없는 자들은 고분고분 따르는 척 가장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담화는 "숨겨진 대본"(hidden transcript)으로 이는 핍박을 당하는 이들이 무대 밖에서, 그들의 주인과 주인의 가신들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 나누는 대화이다. 숨겨진 대본이야 말로 농민들이 진짜로 믿지만 소심하여 공공연히 표현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을 추출(抽出)해낸다. 그 결과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데, 이는 대부분 엘리트 계급이 어떤 종류의 공적인 반대도 묵인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파괴적 담화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숨겨진 대본은 하류전통의 많은 주제들을 다루는데, 담고 있는 특징적인 주제로는 "심벌의 타당성 문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와 꼬리표달기, 원인 분석과 비난, 그리고 지방역사에 당파적 의미를 주려는 호전적인 노력" 등이다. 당연히 이런 주제들은 공적인 담화에서는 다룰 수 없는 사항이지만, "대안적 윤리 세계"나 농촌의 "잠재적인 표준 소문화권"에는 숨겨져 있다. 이것들은 "천년세계, 대중 극장, 민담(民譚), 서민 이야기, 신화, 시, 농담과 노래"의 형태를 취하며, 우리는 여기에 비유를 추가할 수 있다.
만일 하류전통과 숨겨진 대본이 무대 밖에서 구전으로 남아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들 주제에 가까이하든가 확인할 수 있겠는가? 억압받는 계급 중에서 발견되는 제 삼의 정치적 담화가 없었다면 이런 문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 담화는 엘리트 계급의 공식적 대본에 우연히 표현되거나 혹은 엘리트 지배계급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농민들이 무대에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스콧트는 이 제 삼의 정치적 담화를 "공적인 장소에서 일어나지만 이중의 의미를 갖거나 또는 배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변장과 익명의 정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사실상 "일부 삭제된, 애매모호하고 암호화된 형태의 숨겨진 대본이 언제나 종속된 그룹의 공적인 담화에 나타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장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가 토라에 성문화된 이스라엘 판 시내산 언약에서 발견되는 정의와 심판의 주제를 가지고 하류전통의 입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관계했다는 점이다. 예수는 그렇게 함으로 논쟁의 장으로 들어섰으며 역사에 또 다른 파당적 의미를 부여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농민 교육
예수의 비유들을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 비유들이 "심벌의 적합성 문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 원인 분석과 비난, 그리고 지방역사에 파당적 의미를 주려는 호전적 노력"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살피는 일이며, 간단히 말해 예수의 비유가 일 세기 "억압받는 이들의 교육"에 어떤 공헌을 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보다 넓은 정치적, 신학적 프로그램으로써, 정치적 분파를 이루는 운동의 초석이 되는 예수의 비유의 목적과 기능을 살핌에 있어, 브라질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연구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프레이리의 비정통적 교육은 그가 농민 문맹자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전통적인 교사직을 내놓음으로 시작했다. 농민들도 읽고 쓰는 능력을 취득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리는 그의 초기 노력이 다소 고지식하여 교육이 갖는 정치적 요소를 간과했음을 시인했다. 프레이리는 이런 실수를 마을 농민들과 열심히 일하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놀랍게도 농민들의 지배자들은 마을 농민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이미 엘리트 세계관을 "제방 교육"(banking education)이란 형태로 깊이 심어 놓았음을 프레이리는 깨달았다. 이 논문에서 소개한 단어를 빌어 표현하면, 이 침전물은 엘리트들의 공개적 대본을 통해 알려진 일종의 상류전통의 모습이다. 프레이리의 농촌 학생들은 지배자들의 부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가난을 설명하는 세계관에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은 하느님의 계획을 반영하고 있으며, 농민들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맡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배웠다. 변화의 조짐이란 없었다. 미래는 현재와 같이 정해진 것이다. 농민들이 이런 사상적 감옥에 갇혀 있는 한,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역사라 부를 만한 역사도 없으며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그들의 역할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 또한 갖고 있지 않음을 프레이리는 간파했다. 자신들의 의견을 용기 있게 말해야 하는 극히 드문 경우에 폭력과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문화권 속에 태어난 그들은 이런 침묵의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이런 비관적인 출발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리는 4 단계 교육을 계속했으며, 이 중 3 단계가 이 논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 째로 프레이리는 자신의 교육 안(案)이 농민들의 콘텍스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신념아래 농촌 마을에 현장 참여 관찰자(participant-observers) 팀을 보내 그들이 농민들의 눈으로 세상보기를 배우게 했다. 그들은 농민들의 말과 어법을 배우고 그들의 말 속에 독특한 아름다움과 지혜를 발견했다. 이런 깊은 경험으로부터 팀원들은 "생성적인 말"을 수집하여 상류전통의 침전물과는 매우 다른 농민들의 "주제/화제를 담은 우주"(thematic universe)를 만드는 초석이 되게 했다. 다른 말로, 팀원들은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대본에 의해 고취된 농민들의 숨겨지고 묻힌 하류전통의 형태와 때로는 자취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둘째로, 이런 생성적인 말과 주제에 기초하여 프레이리는 그가 "성문화(成文化)된 것들"이라고 칭한 것--농민들 생활에 반(反)하고 문제시 되는 시각적 그림들--을 비교했다. 그는 이런 성문화된 것들(codifications)을 그가 "문화권"(culture circle)이라 칭한 한 떼의 마을 농민들에게 제시했다. 성문화된 것은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자극제였으며, 이것은 끝없이 열려 있었다. 성문화 된 것과 문제를 제시하는 질문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배움의 과정을 시작하게 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며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누가 누구 덕에 이익을 보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으로 대화는 일시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며 또한 종교적이다.
이런 성문화된 것을 조사해 가면서, 농민들은 자신들 세계의 해설자들이 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 변화불가능 속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개조 가능한 구조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성문화 작업에 대한 논의는 점차 분석적인 대화를 이끌어 내고 농민들로 하여금 표면적인 특징에서 보다 심층의 불분명한 문제를 탐구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빈곤이 엘리트들이 축적한 부의 결과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들의 가난은 불변의 필연성도 아니고 신의 심판도 아닌 변할 수 있는 인간의 우연성임을 알게 됐다. 사회에 대한 기술은 사회 분석으로 옮겨졌다. 마을 사람들이 특정의 문제를 일으키는 독특한 성문화된 것들을 배우는 동안, 그들은 이런 식으로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법을 또한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는 통찰력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프레이리나 그의 현장참여 관찰자들이 몸으로 함께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신들의 세상을 이해하는데 달인이 되어 갔다.
교육의 세 번째 단계는 성문화한 것들이 드러낸 것을 탈성문화하고(decoding), 문제화하고(problematizing), 또 재(再)성문화하는(recodifying) 작업이다. 문제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고정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풀어야 하는 문제로 재연(再演)한다(re-present). 이런 과정을 예전에는 진리로 믿었던 것들을 탈성문화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 이 세상이란 수많은 해결책 앞에 놓인 문제투성이임을 폭로한다. 다른 말로, 농민들은 그들의 지배자들의 상류전통을 "탈성문화"(해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런 새롭게 정의된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논의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이 되어 자신들만의 역사를 만들 힘을 얻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하류전통을 적절히 유용하여 세상을 "재(再)성문화"하고 있었다. 프레이리는 침묵의 문화를 깨고,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세력을 탈성문화하고, 변화된 세상의 이상을 재성문화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의식화"(conscientization)라고 불렀다.
만일 배움이 행동을 유발시켜야 한다면, 단지 당면한 문제를 탈성문화하고, 문제화하고, 재성문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레이리는 자신의 학생들로 하여금 농민들이 그들의 지배자들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을 나열한 "제한된 상황"과 그 도전을 가능케 하는 행동을 담은 "제한된 행동"을 성문화하도록(codify) 부추길 필요를 느꼈다. 이 일련의 사이클이 프락시스(praxis)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반성과 행동"을 수반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묘사한다. 이 교육법은 두 가지 주요 결과를 낳았다. 첫째로 현장참여 관찰자들은 하류전통이 이미 농민들 마을에 현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둘째로 그들은 압제받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전통이 앉고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 하여 저항과 정책성 확립에 이비자할 수 있는지를 가르칠 수 있었다.
프레이리의 압제받는 이들을 위한 교육법은 지난 20세기 후반 30여 년간 하나의 운동이 되었는데, 이는 그의 방법은 다른 곳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 독재 정권이 농민들을 지배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소개되었다. 그의 연구는 여러 상황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데, 이는 이 연구가 권위주의적 정권하에 있는 농민들을 북돋우는데 필요한 일련의 요소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적용성이 성공에 일익을 담당했다. 프레이리의 교육이 성공한 이유는 이것이 프레이리 자신에 의존하지 않고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 농민들의 능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의 독특한 이해나 새로운 사상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배우는 법을 배웠으며 그래서 자신들의 기술을 다른 상황과 문제들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기술은 교육이 어떤 운동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다. 프레이리나 예수와 같은 지도자가 이런 과정을 창시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행할 수 있는 공동체 혹은 마을 중심의 활동이었다. 선생에서 교육 자체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이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교육 자체가 선생보다 오래 살아남아 운동의 형태를 낳았다.
위기 속의 갈릴리 농민들의 선생, 예수
예수의 비유야 말로 바로 그런 식으로 작용했으니, 곧 그 생애 동안 농민들과의 대화 속에 드러난 구두(口頭)의 성문화 작업이다. 프레이리가 시각적 성문화 작업을 시도했듯이, 예수는 우리가 비유라고 부르는 구두의 성문화 작업을 사용했다. 현대 해석학자들은 비유가 자체로 독립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를 해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예수의 비유는 농촌을 배경으로 다른 배움의 형태를 통해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여기서 해석이란 공동체 활동이었다. 프레이리는 마을 사람들을 "문화권"으로 모았지만, 예수는 규칙적인 지방 모임을 비유로 가르치는 기회로 삼았다. 비유는 가르침의 시작이지, 그 과정의 끝이 아니었다. 오늘날 종교와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분리시키려는 서구의 노력과는 달리, 비유와 논쟁은 마을 농민들이 그들의 일정한 모임에서 다루는 모든 관심사를 포함했을 것이다--당시 공회는 건물이 아니라 마을에 관련된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다루는 공동체 모임이었다. 비유가 이런 식으로 작용했다면, 비유를 말하는 주된 임무는 농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보다 큰 가르침의 일부분이었다. 농민들의 지배자들의 행실이 어떻게 그들의 마을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인식을 비유가 구체화했듯이, 비유는 또한 예수운동을 형성하는데 활기를 북돋우었다.
분수령, 토라와 언약의 위반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예수의 비유는 부유하고 권세를 갖은 엘리트 그룹과 상황이 악화일로를 달리는 가난한 농민들 간에 놓인 거대한 분수령을 구체화한다. 이 비유는 궁핍한 거지의 운명과 부유한 엘리트의 행운을 이 세상과 저 세상에 병행해 놓고 있다. 다가올 세상에서의 기대치 않은 방향전환은 이런 차이를 재연하는데(re-present), 빈부의 일반적 견해를 파헤치고(탈성문화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재(再)성문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 문제를 제시한다(문제화한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살아 있을 때에 너는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불행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26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지도 못한다.' 부자가 말하였다. '조상님, 소원입니다.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제발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서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날지라도,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눅 16:19-31)
비유(눅 16:19-31)는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6:19-22 장면 1: 부자와 가난한 자, 질서
16:23-31 장면 2: 부자와 가난한 자, 무질서
처음 장면은 사치 속에 사는 부자의 삶과 절망적인 빈곤의 상태에 있는 궁핍한 자의 삶을 대조해 보여준다. 노련한 이야기꾼으로 또 성문화하는 사람(codifier)으로서, 예수는 전체의 그림을 단지 몇 가지 낱말을 빌어 솜씨 있게 표현한다. 부자는 "자색 옷"(가장 비싼 색깔로 최고의 엘리트 계급과 왕족들이나 누릴 수 있었음)과 "고운 베옷"(이집트에서 수입한 옷감)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며"(단지 축제일뿐만이 아님) 가난한 자와 접촉이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대문이 그를 자기 집 주변 길가에 널린 거지들로부터 보호). 가난한 거지는 헌데 투성이 몸이었으며(영양실조의 결과), 늘 배고픔으로(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함),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와 부자의 집 밖에 던져진 쓰레기 더미를 놓고 길가의 개들과 절망적으로 싸워야 했다(그 와중에 개들이 그의 헌데를 "핥았다"). 장면 1의 끝부분은 고결한 삶의 극치로 부자는 영예롭게 장사지냄을 받고, 반면 나사로의 시체는 길에서 주운 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쓰레기 더미에 던져진 것을 암시한다.
이제까지는 모든 일이 기대한 바와 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사로--얄궂게도 이 이름은 "하느님이 도우시다"는 뜻--가 향연의 빈객(賓客)처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고, 반면 부자는 하데스(Hades)의 화염 속에 있음을 들을 때, 청중들은 충격 속에 잠기게 된다. 여기서 하데스를 기독교의 "지옥"(hell)과 같은 개념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지 죽은 자들이 가서 부활을 기다린다든지 삶 동안 무시했던 교훈을 배우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긴 두 번째 부분은 "압제자의 교육"이라 칭할 수 있다. 비유의 이야기 형식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의 존재는 바로 부자가 풀어야 하는(decode) 성문화된 것(codification)이다. 아브라함은 부자를 가르치고자 하나, 부자는 자신의 안건만 주장할 뿐 아브라함이 제시하는 바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 나사로를 시켜 물을 보내소서! 나사로를 내 다섯 형제에게 보내소서!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사로가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가정 하에 나사로를 종이나 추종하는 메신저로 볼 뿐, 향연의 귀빈으로는 분명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의 고통을 감하지고 그의 요구에 응하지도 않는다. 그의 계획은 이런 듯하다: 불을 좀 더 세게 하여, 그가 어떻게 반응하나 보자.
압제자의 교육을 통해 아브라함은 나사로도 모든 면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부자가 깨닫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아브라함이 부자를 부를 때 친족 관계의 말을 쓰고(테크논, te,knon; 아이), 또한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파테르, path,r)라 부름에 주목하라. 물론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또 부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부자와 나사로는 형제가 되는데, 이 점을 부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아버지와 다섯 형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그의 친족 개념은 계급 연대와 자신의 이익에 기초한 것이다. 만일 나사로가 형제였음을 부자가 깨달았다면, 비유의 첫 번째 장면은 부끄럽고,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토라가 가르치고 있는 바이다.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진 상류전통조차도 땅은 야훼의 선물이며(레 25:23) 땅의 소산은 축적의 대상이 아니고 함께 나누어 모두가 넉넉함을 누리게 한다는 초기 이스라엘 언약 전통을 담고 있다(레위기 25장; 신 15:1-18). 하지만 부자와 그 계급은 땅의 부를 축적하고 세상의 나사로와 같은 이들을 참혹한 몰락으로 밀어붙이며, 스스로는 이름의 시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늘 주장해 왔다. 나사로의 이름을 묘하게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손님접대의 임무--아브라함이 이름을 얻게 된 덕목--를 완수하는가 보려고 그들에게 보내진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나사로가 재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나타난다. 모세는 언약의 원칙을 가르쳤으며, 그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형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거나 압제적인 지배자가 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예언자들은 거난한 자를 착취하는 왕과 왕족 관리들을 비난했다(예를 들면, 사 1:16-17; 5:6; 렘 5:23-29; 21:11-14; 암 2:6-11; 5:10-24; 미 3:1-3, 9-12). 그러나 아브라함의 호소는 꽉 막힌 귀와 닫힌 맘에 떨어진 듯하다. 하데스가 지옥은 아닐지라도, 부자가 회개하고 나사로를 형제로 받아들일 수 없거나 거부하는 점으로 볼 때, 빠르게 지옥의 모습을 띠어간다.
이런 방향으로 읽을 때, 비유는 헤롯 안티파스의 갈릴리 그리고 대제사장이 다스리던 유대와 예루살렘에 존재했던 두 층의 사회를 성문화하고 있다(codifies). 대여금에 이자를 취한다든가 부당한 세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이 모세의 언약원칙을 깨는 뻔뻔함이 로마 대리 통치자들 하에서 커다란 빈부의 격차를 가져왔다. 부정이 불평등을 낳았다. 예수의 비유는 부정과 불평등의 원인을 성문화하고 이것들을 풀어야 할 문제로 제시한다. 이 경우 중요한 힌트가 아브라함과 부자와의 대화 속에 나타난다. 넓게 이해되는 친족의 개념에 입각한 사회관계의 회복만이 이를 깨들인 사회계급 제도를 대체할 수 있다. 계급사회는 토라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는 지배계급을 낳았고 갈릴리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억압적인 빚의 수단을 거쳐 그들의 땅을 빼앗는데 힘을 다했다. 친족관계의 상실은, 실제든 가상이든, 나사로와 같은 이들을 빈곤과 몰락으로 내 몰고, 이 거대한 틈은 자라서 결국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갈라놓았다. 그들이 함께 누렸던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의 기저가 무너졌다. 만일 성문화 작업에서 징후가 절망상태의 거지라면, 그는 또한 갈릴리와 유대를 강타한 사회적 질병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유는 이 커다란 틈(빈부의 분수령)을 문제화했으며, 그 의미를 재(再)성문화했다(recodified). 이는 어떤 것의 일반적인 질서를 말함이 아니고("가난한 자는 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언약을 신중하게 다루지 못함을 가리킨다. 부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가난이 하느님으로부터의 심판 또한 아니다. 나사로가 빈객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브라함의 향연장에 드러나는 무질서를 대할 때 (현재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일반적인 노력이 명백해진다. 어떻게 거리의 쓰레기 같은 나사로가 빈객이 될 수 있는가? 사후세계가 잘못되었든가 아니면 이 세상에 무엇인가 끔찍이도 잘못되었다. 끈기 있게 탐구한다면, 비유는 빈부의 관계를 드러내며, 결국 세상의 나사로들을 거리의 폐품과 같은 거지로 몰아 부유한 자들로 더욱 부유케 함으로써 이런 분수령을 유지하는 사회제도를 폭로한다. 나사로는 친족관계와 마을 생활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대표적인 인물로, 제도의 부차적 손실의 일부로 사회적 죽음으로 유배당한 자이다.
만일 예수가 억압받는 이들의 교사로서 이 비유를 말하고 또 농민들 마을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했다면,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제시된 사회상을 탈성문화하고(decode) 부자의 대문 앞에 "던져진"―수동형으로 아마도 하느님의 계획적인 행동을 암시―거지의 존재를 문제화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수많은 그의 비유에서처럼, 예수는 갑부와 끔찍이도 가난한 자를 같은 이야기에 포함시키는데, 이런 상황은 자신의 생애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어떤지 또 서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함이다. 사회제도의 정점에 축적된 부는 밑바닥의 엄청난 빈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운명의 전환과 이어지는 압제자를 향한 교육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부자의 태도를 탈성문화하고(파헤치고) 어떻게 아브라함이 모세의 말과 예언자들의 도(道)를 따라 세상을 재성문화하는지--간단히 말해, 마을 농민들의 투쟁을 말하기에 합당한 친족과 손님접대의 바른 이해를 회복함을--깨닫도록 격려한다.
비유가 예증하는 대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은 매우 중차대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부자 계급의 영광스런 조상으로, 그 이름으로 말미암은 정체성이 이스라엘의 지배자들을 정당화하는 본보기였는가(눅/Q 3:7-9) 아니면 그의 청지기 엘리에셀과 더불어 세상의 나사로들의 친구요 향연의 주인으로 그들을 반기고 이 생애에서 거부되었던 환대를 회복하는 자였는가? 아브라함이 향연의 주인이고 나사로가 빈객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눅/Q 13:28-29).
품삯 받는 날 희생 감수하기(Paying the Price on Payday)
포도원의 일꾼들 비유(마 20:1-16)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를 문제화할 목적으로 포도원 이미지에 의존한다. 이 비유에서 지배계급의 일원과 노동력을 파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하루벌이 일꾼이 나란히 등장한다. 아주 절망적인 상태의 하루벌이 일꾼들은 마을과 친족들이 줄 수 있는 어떤 모양의 보호망도 다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들은 종종 농가에 태어난 둘째 혹은 셋째 아들이었다. 자신들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할 때, 그들은 집과 마을을 떠나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도록 내버려졌다. 일단 하루벌이 일꾼들이 그들의 보호망을 잃게 되면 그들의 상황은 위급하게 되고, 그들은 농경사회에서 영양실조 합병증 또는 질병으로 죽을 때까지 간헐적으로 일하며 "소모품"이라 불리는 그룹에 속하게 된다. 하루벌이 일꾼들은, 특히 자신들의 땅을 상실했을 때, 일자리가 있을 때에만 일했고, 일자리가 없을 때에는 구걸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삶이란 문자적으로 막다른 골목이었다. 상황을 더욱 나쁘게 하는 것은, 이들 절망적인 하루벌이 일꾼들이 다른 농군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태인데, 농군들은 자신들의 땅을 경작하는 외에 최저 생계수단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벌이 일꾼들처럼 일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는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또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이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이 되어,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러니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그대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그대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대 눈에 거슬리오?'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마 20:1-20)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루벌이 일꾼을 고용하려고 시장으로 나가는데, 아마도 포도를 수확할 일손이 더 필요한 듯하다. 좋은 포도주를 만들 포도를 얻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내에 포도를 수확해야 하며, 그래서 하루벌이 일꾼들이 필요했다. 더 많은 일꾼들을 고용하려고 주인이 여러 번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아, 그는 큰 포도원을 갖고 있었고 풍작을 이루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풍작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눅 12:16-21)?
여기서 엘리트 지주(地主)가 하루벌이 일꾼들을 고용하려고 몸소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비유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기 관리인에게 이 일을 맡겼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하지만 잘 그린 정치만화처럼, 암호화된 비유(parable codification)가 설정한(codified) 장면에서 지주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 청중들이 맞을 마지막 대결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예수는 평상시 보이지 않는 엘리트들을 보이게 만들었다.
시장에 계속 나가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지주는 일꾼들을 싼 값으로 고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일꾼들과 한 데나리온(노동자의 평균 품삯)에 합의하고, 두 번째로 아고라(avgora,, 시장)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당한(디카이오스, di,kaioj) 품삯을 주겠다며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다. 오후 다섯 시에(원문에는 열한번째 시간--역자주) 주인은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라 명령할 뿐, 품삯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점으로 미루어, "포도원 주인"은 일꾼들의 품삯을 스스로 정한다. 일꾼들이 많다는 것은 값이 싸다는 것은 의미한다. 날이 저물어서도 어떤 일꾼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비유는 다음의 세 장면을 연출한다:
20:1-7 장면 1: 하루벌이 일꾼 고용
20:8-10 장면 2: 품삯 주기
20:11-16 장면 3: 일꾼들과의 충돌
비유의 첫 장면이 포도원 주인의 활동으로 시작했듯이, 둘째 장면 역시 주인이 자기 청지기에게 명하는 말로 시작한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20:8). 품삯을 주는 보통 순서는 먼저 온 사람들에게 먼저주고,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나중에 주는 것이지만, 주인을 그 순서를 바꾸었다. 이렇게 한 것은 맨 먼저 고용된 일꾼으로 하여금 맨 나중에 고용된 일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고, 수확의 어려운 수고("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 20:12)의 정도에 따라 품삯의 일부를 받지 않았음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맨 먼저 고용된 일꾼들의 불평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자신들의 수고가 욕되었다고 믿었다.
품삯 일정표에서 주인은 맨 먼저 고용된 일꾼들의 온종일 수고나 맨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의 한 시간 수고가 똑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모욕이다. 보통 하루벌이 일꾼들은 침묵을 지키고(침묵의 문화) 무대 밖, 지배자들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이 당한 모욕에 대해 불평을 토한다. 그러나 이번의 모욕은 너무 부끄럽고 곤혹스러운 것이라, 엘리트가 있는 무대에서 마주 대항할지라도, 반응을 보여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격하됨에 동조하는 것이 되는데, 자신들의 수고의 비교적 가치에 순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하루 품삯은 데나리온 아래로 떨어져 그들을 보다 심각한 빈곤과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들답지 않게 기대와는 달리, 세 번째 장면이 하루벌이 일꾼들의 주도로 등장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당한 노동의 부끄러움에 반응을 보인다. 주인의 반응은 신속하고 날카롭다. 먼저 그는 일꾼 중 하나를 택해 예로 삼는다: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둘째, 그는 한 데나리온으로 예정된 계약을 상기시킨다: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이 말은 양자가 상호 합의하에 임금을 정한 것을 뜻하나, 사실은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누구든지 이를 받아들이는 자를 고용했을 것이다. 셋째, 주인은 일꾼들을 포도원에서 내어 쫓는다: "그대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이는 배척과 피하는 행위로, 일꾼들이 다시는 그에게서 일거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정점에 달한 주인의 반응이 가장 중요한데, 왜냐하면 주인이 자신의 행위를 신비화하고, 관대한 행위로 묘사함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다루고 있는 문제가 더 이상 품삯이 아니라 주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선물임을 주목하라. 그의 수사적인 질문--"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은 누구나 그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만일 그렇다면, 일꾼들은 주인의 후함에 대하여 불평하는 꼴이 된다. 헬라어 의문문 형식은 번역본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핵심을 찌르고 있다. 주인은 "또는 내가 선함으로, 그대 눈이 악한 것이요?"(저자역). 이 비난은 하루벌이 일꾼들은 그들의 악함을 나타내고, 주인의 선함을 강조한다.
모든 성문화된 것이 그렇듯 만일 비유가 이 질문으로 끝난다면, 농민 청중들은 탈성문화, 문제화, 재성문화 작업 등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땅이 주인과 주인의 계급에 속해 있다는 주장을 탈성문화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땅은 야훼에게 속하고 그는 이것을 땅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토라는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언약이 옳다면, 지배계급이 자신들과 그들 계급을 위해 야훼의 특권을 가로채고 있음을 드러내고 심판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깨닫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렇다고 볼 때, 비유에서 주인은 이런 통찰력을 "악한 눈"(거짓 의식)의 결과로 매도하며 내쫓고자 한다. 지주의 조용한 주장에 대한 농민들의 폭발적 분노를 문제화시키는 비유를 통해, 농민들의 지주의 교만한 주장을 탈성문화 하고 또 "악한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과 "깨닫는 눈"(비판적인 의식; Q/눅 10:24; 막 8:17-18을 보라)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재성문화 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관대함을 보인다는 주인의 신념은 토라의 나눔의 원칙(extension principle)―가진 자들은 땅의 풍요로운 수확을 갖지 못한 자와 나누고 자신들을 위해 축적하면 안 된다―에 근거하여 판단되어져야 한다. 반대로, 주인은 영양실조를 유발할 임금 밖에는 주지 않으며, 토라의 나눔의 원칙을 비웃고 있다. 주인의 관대함이란 상상력의 결과일 뿐, 하루벌이 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착취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는 분수령의 골을 깊게 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 청렴한 생활을 살지도 않으며, 그와 그의 계급은 토라에 기초한 정의 실현에 큰 거침돌이 된다. 억압 받은 이들의 교사의 손에서, 비유는 땅의 소산이 재분배되어야 하는 품삯 받는 날, 포도원처럼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비난을 평가하는" 노력을 자극한다. 비유에서 주인은 소수를 지지하기 위해 다수를 빈곤으로 내 모는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다. 자신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권력의 횡포에 대항하여, 하루벌이 일꾼들은 권세 앞에서 진실을 말하게 되고 그 중 하나는 그 값을 치른다. 20:16(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에 부착된 이 말은 아마도 비유에 대한 초기 교회의 이해를 반영하거나 혹은 일꾼들에게 연설하는 주인이 얽어맨 주문(呪文)을 깨뜨리도록 청중을 선동하는 예수의 도발적 행동을 반영한다.
이 비유는 그 속에 내포되어 있고 또 주인의 마지막 반론 속에 표현된 신비화된 것들에 대해 농민들을 자극하여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성문화 작업으로서 역할을 잘 담당했을 것이다. 주인은 자신의 욕심을 관대함으로 신비화시켰으며 또 토라의 의미를 왜곡하여 그의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루벌이 일꾼들이 실제 "깨닫는 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들의 항의가 "악한 눈"을 가진 결과라고 매도하며 내어 쫓았다. 비유의 역동성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빈곤의 원인을 밝힐 수 있고 땅의 가난한 자에 대한 비난을 재평가하게 된다. 이 논쟁적인 비유 속에서 공개적 대본과 사건의 공식적 의견이 가구주(오이코데스포테스, oi,kodespo,thj)에 의해 표현되고, 한편 하루벌이 일꾼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폐기처분하는 가구주의 오만함을 드러냄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정죄케 만든다. 비유를 탐구하면서, 농민들은 "포도원 주인"의 거짓된 의식과 하루벌이 일꾼들의 비판적 의식을 구별하게 된다. 농민들은 별로 말이 없지만, 지주가 그들의 항변을 묵살하고 그들에게 악한 눈을 가진 자들이라고 오명을 씌우려 하는 점을 들어 그의 거짓된 의식을 유도해 낸다.
결국 누구의 포도원인가?
악한 청지기 비유(막 12:1-12 // 마 21:33-46; 눅 20:9-19)는 이사야 5:1-7을 넌지시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예수의 비유 초반에 있는 이미지는 분명 이사야 5:1-2를 반영하며, 이는 예언서에서 발견되는 세 개의 별개의 문학적 단위―(1) 2:1-2, 사랑의 노래; (2) 5:3-4, 재판비유와 탄원; (3) 5:5-7, 심판 신탁―중 첫 번째이다. 사랑의 노래로 시작한 것이 이스라엘의 족속과 유다 사람을 기소하는 심판형식으로 끝맺는다. (히브리 원문에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사람"은 둘 다 단수로 쓰였으며, 이는 두 왕국의 지도자를 암시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문으로는, Marvin L. Chaney, "Whose Sour Grapes? The Addressees of Isaiah 5:1-7 in the Light of Political Economy," in Semeia 87: The Social World of the Hebrew Bible [ed ; Atlanta: Scholars Press, 1999] 105-122를 보라--역자 주.)
[야훼께서]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5:7)
이사야에서 문제는 포도원이 올바른 수확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야훼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5:2b). 예수의 포도원 비유에서 문제는 포도원을 관리하도록 부름 받은 소작인의 성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
우연찮게 내가 번역한 글이 인터넷 상에 떠도는 것을 보았다. 번역자 이름은 빠진 채...
번역자에게도 저작권(?)이 주어져야 한다면, 이 참에 밝히고
또 사라져 없어진 자료도 여기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오랜 파일을 찾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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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William R. Herzog II, "Why Peasants Responded to Jesus;" in Richard A. Horsley, ed., Christian Origins [A People's History of Christianity, Vol. 1; Minneapolis: Fortress, 2005], 47-70의 본문을 완역한 것이다. 다만 책 여백에 있는 삽화, 사진 및 설명문은 기술상의 이유로 옮기지 않았으며, 성서인용은 본문 속으로 집어넣었다. 저자 헤르쪼그는 뉴욕에 있는 Colgate Rochester Crozer Divinity School에서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Parables as Subversive Speech: Jesus as Pedagogue of the Oppressed [1994], Jesus, Justice and the Reign of God [2000], Prophet and Teacher: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ical Jesus [2005] 등이 있다.)--박원일 옮김
농민들은 왜 예수를 따랐는가?
윌리암 R. 헤르쪼그 II
서기 1 세기 팔레스타인에서는 많은 대중적 운동들이 일어나고 사라졌지만, 그 어느 것도 운동 주창자의 사후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예수운동은 이런 규칙 속에서 주목할 만한 예외에 해당한다. 왜 그랬을까? "아래로부터" 역사 혹은 대중의 역사 쓰기 연습의 하나로, 이 장(章)에서는 예수의 가르침의 한 단면을 탐구하고자 한다. 곧 예수의 비유는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예언자적 교사의 삶과 행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농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겪는 점진적인 스트레스를 분명히 표현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며, 그에 대응하는 실천 가능한 몇 가지 방법을 밝히도록 만들었다. 그의 잊지 못할 구전(口傳)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처한 상태의 원인을 깨닫게 하여 풀어나가야 할 문제와 취해야 할 행동을 제시토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비유는 그의 말씀을 들은 농민들의 의식을 일깨워 주었으며, 그의 사후에도 은밀히 이어지는 운동―그의 삶과 가르침 속에 발견되는 생명력 있는 주제들을 영구히 기억하는 운동―에 연합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가? 그들의 지도자가 십자가형을 당한 후에도 흩어지지 않고 농민들이 운동을 일으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예수운동에 가담하고 이를 전파하려고 유대와 갈릴리 각지에서 모인 농민들이 이끌렸던 매력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다보면 (앞으로 쓰고자 하는) 대중의 역사와 이 모든 사건을 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확연히 알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은 이 운동이 예수 사후(死後) 오순절의 결과로 가정한다. 우리가 여기서 전개하고 있는 관점에서 보면, 예수운동은 예수 생애 동안 갈릴리 마을에서 이미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예수운동은 그의 부활의 결과로 일어났고, 바로 이런 부활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예수 운동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 글이 제시하는 바로는, 예수운동은 갈릴리에서 그의 예언자적 삶과 가르침의 결과로 일어났으며, 이는 당시 농민들과 주위의 다른 지방의 가난한 이들이 겪었던 압제적인 상황에 따른 결말이었다.
여기서 던진 질문에 일부만 답한다 할지라도, 다음의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첫째, 로마인들과 그들 대리통치자들이 어떻게 갈릴리와 유대의 농촌생활에 점진적인 경제적, 사회적 압박을 가져왔나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어야 한다. 둘째, 엘리트 지배계급과 그들의 고용인들이 대중통신을 관리하고 읽고 쓰는 일을 독점하다시피 했음으로, 이런 "침묵의 문화" 속에 잠긴 시골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를 탐구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삶과 작품을 통해 예수와 같은 인물을 이해하는데 배경이 되는 정치적, 문화적 유사성을 그려내고자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방법과 가르침을 채택한 운동을 발생시켰음으로, 프레이리와 그의 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창시자와 운동, 예수와 예수운동 사이를 연결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유대와 갈릴리 사회: 분수령
지배자와 피지배자
대중의 역사를 파헤치려는 우리의 노력이 그들의 지배자들의 활동을 분석함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이 다소 얄궂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난한 자들이 어쩔 수 없이 대처해야 하는 상황을 지배자들이 만들었다.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분수령으로 경계가 그어진 사회 속에서 살고 일했다. 이 분수령은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통제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로마는 대리 왕(client king) 헤롯 안티파스를 통해 갈릴리와 그 주변을 다스렸으며, 그의 아버지 헤롯 사후에 갈릴리를 맡겨 통제케 하였다.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은 서기 6년 유대 지방을 로마 행정구역에 할당한 후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관료들에게 대리 통치를 시켰다. 그들은 로마 장관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또한 로마 장관들은 시리아에 주둔하는 지방 총독에 종속되어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로마 장관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서기 26-36년 사이에 다스렸으며, 그의 통치는 서기 18-36년 사이 대제사장을 지낸 가야바(Caiaphas)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이 모든 사실은 팔레스타인이 "폭력 정책"으로 다스리는 "제국적 상황" 속에 처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 관료들이 갖는 권력은 성전과 희생제사 제도를 통제함에 기인하며 이는 나름대로 독특한 문제를 야기했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지배계급은 갈릴리가 정치 경제적으로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구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릴리인들로부터 십일조와 성전과 제사장에게 드리는 헌물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결과, 로마에 조세를, 헤롯 안티파스에 세금을, 성전에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야하는 갈릴리인들에게는 과대한 요구에 정신이 몽롱했을 것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대제사장들 사이에 성전을 수호한다는 그들의 임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충돌했다는 사실이다. 제국의 속박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한 해방의 하느님을 기념하는 순례 축제기간 동안 이 딜레마는 특히 그 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이런 축제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은 로마와 합작해 자신들은 권세와 특혜를 영구 유지하려는 매국노에 불과했다. 실제 대제사장 가족들이 점차 백성들을 극도로 착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탈무드에서 잘 알려진 애가(哀歌)는 이들 대제사장 세대들의 매국적 행위에 대한 대중의 관점을 담고 있다.
보에투스(Boethus)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지팡이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안나스]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속삭임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카트로스(Kathros)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펜촉(pens)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비아비의 아들 이스마엘(Ishmael ben Phiabi)의 집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의 주먹으로 인해 네게 화 있으리로다
그들은 대제사장들이요, 그들의 아들들은 회계담당자요, 그들의 사위들은 성전 관리인이요, 그들의 시종들은 곤봉으로 백성들을 때림이니라. (b. Pesahim 57a; t. Menahot 13:21)
만일 이 애가가 1세기 당시 역사적 움직임과 사회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면, 이는 폭력(지팡이, 곤봉, 주먹), 빚 문서와 "상류전통"(펜촉), 성전 직위와 직무의 통제(대제사장, 회계담당자, 관리인), 그리고 소문과 뒤에서 험담하기(속삭임) 등이 로마인 대군주(大君主)를 섬기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쓰였음을 보여준다. 로마 정책과 행동이 마을 농민들의 지방 문화와 부딪칠 때, 지방 권력자들은 거의 언제나 로마인들과 편을 짜고 그 땅의 농민들을 저버렸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관습은 단지 대리왕과 대제사장들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만 증가시켰을 뿐이다. 정치적 상황은 폭발 직전이었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긴장은 널리 펴져있었다. 악한 포도원 소작인 비유(막 12:1-12)에서 우리는 지배자들을 문제의 일부로 여겼던 당시 농민들의 "아래로부터" 신학하기를 엿볼 수 있다.
도시의 부유한 자와 지방의 가난한 자
팔레스타인의 분수령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은 지형적일 뿐 아니라 또한 정치 경제적이었다―집중적으로 도시의 부유한 자와 지방의 가난한 자, 부자와 나사로(눅 16:19-31)를 나누는 커다란 간격. 도시와 지방 사이의 관계란 근본적으로 약탈과 착취의 성격을 띠며, 우선적으로 세금과 공물의 형태를 취했다. 비록 공물과 세금의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농민 수확의 25-30 프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계산으로든, 로마에 조세를, 헤롯당원에 세금을 또 성전에 십일조를 바쳐야하는 갈릴리인들에게 이 숫자는 특히 억압적이었다. 조세를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지배체제이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생산에 참여한 이들로부터 제일 큰 몫(소위 잉여농산물)을 취했다. 세금과 공물 납부에 저항하는 이들은 폭력적인 보복을 당해야 했다.
갈릴리 임기 초기에, 안티파스는 셉포리스을 짖고 또 다른 도시를 갈릴리 해변에 건축한 후, 자신의 후원자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리며 이 도시를 티베리우스라 명명했다. 이 도시들은 작전상 중요한 자리에 위치했는데, 그 결과 갈릴리 모든 마을이 도시로부터 도보로 하루 이내 거리에 있게 되었다. 안티파스의 도시 건축은 마을 사람들에게 특히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혔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건축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이 요구되었다. 또 마을 가까이 지배계급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농민들이 지배계급의 관리 하에 보다 효율적으로 종속되었음과 소작료 및 세금의 강제모금을 의미한다. 이렇게 갈릴리 농민들은 점차 증가하는 경제적 스트레스에 놓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작물을 심기 위해 빚을 지게 되고, 이런 행동은 고리대금업을 통해 토지의 상실을 낳는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빚과 토지상실이라는 이런 일련의 순화과정이 많은 형태의 사회불안 속에서 대중적 (농민)운동을 낳았다. 당시 유대사학자 요세푸스는 이런 운동들을 얼핏 보여준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던 시기에(서기 26-36), 무명의 사마리아인이 추종자들을 모아 그리심 산에 올라, 거기에 "모세가 숨겨두었던 성물 그릇"을 캘 것을 약속했다(Ant. 18.85-87). 빌라도는 군대를 파견해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흩어버리고, 그 지도자를 처형했다. 약 10년 후, 듀마스(Theudas)라 칭하는 인물이 나타나 한 무리의 추종자들을 요르단으로 이끌어 강물을 갈라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이 위대한 이적을 보이기 전에, 로마 군대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더러는 포로로 사로잡고, 듀마스를 참수(斬首)하여 보임으로 다른 사람들이 단념하여 그의 길을 따르지 못하도록 했다(Ant. 20.97-98). 몇 년 후, "이집트에서 올라온" 한 예언자가 수천 명의 일반 사람들을 이끌고 올리브 산에 이르는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자신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이라 약속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그는 시민공동체를 다스릴 것이라 했다(War 2.262-63; Ant. 20.169-72).
분명 이들 대중적 인물들은 불만이라는 깊은 우물에 접촉한 것이다. 결국 구원이라는 약속은 억압과 절망을 암시하며, 성스러운 그릇을 보이겠다는 약속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오염된 그릇에 대한 불만을 제시한다. 과거에 있었던 위대한 이적을 되풀이 하려는 노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경험을 하기 전 이집트에 노예로 살았던 것처럼 당시 사람들이 속박의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런 대중적인 운동들은 사람들이 지도자를 찾고 있었음을 가리키지만, 그들은 헤롯의 가문이나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서 그런 통솔력을 구하지는 않았다.
이런 행위는 또한 갈릴리와 유대에 정치 경제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농민들은 호구지책을 잃거나 그와 유사한 어떤 중요한 보호막을 상실하지 않는 한 권위에 대해 직접 도전하지 않는다. 보통 농민들은 그들의 호구지책만 안전하다면 착취를 감수한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小)자작농은 (빈부의) 분수령의 가난한 측면에서 지방 계급제도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민들이 보통 빚이라는 통로를 통해 자신들의 토지를 상실하게 되면, 그들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소작인이 되어 지배계급의 인물과 계약관계를 맺으며, 악한 포도원 소작인 비유처럼 소작인으로 사는 것이다(막 12:1-12). 그들은 마을과 친족들과의 유대관계를 잃었지마는, 여전히 토지와 연결되어 있다. 만일 그들이 소작인의 위치마저 잃게 되면, 포도원의 노동자 비유에 등장하는 일꾼처럼 하루벌이 노동자가 된다(마 20:1-16). 이들은 땅도 없어 상처를 입기가 쉽다.
지방의 계급사회에서 농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상실하게 되는 두 개의 실마리가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에 농민들은 가장 처절하게 저항하게 된다. 스콧트(James C. Scott)가 진술하듯이, "아래로 떨어지기 쉬운 농민들은 그들이 가진 기존의 안정보장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처절하게 저항할 수 있다." 첫 번째 실마리는 농민들이 토지를 상실할 때 일어난다. 자신들의 토지와 마을생활의 안전성이 상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사회)운동을 형성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다 절망적인 문턱인 두 번째 실마리는 "의존 관계를 통한 호구지책의 확실성이 무너지고" 소작농으로서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 아닌 하루벌이 노동자의 위험한 생활수준에 이를 때이다.
이집트 속박으로부터 해방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던 옛 전통에 초점을 둔 이 대중 운동들은 농민들이 그들의 토지 및 땅과 관련된 약속의 버팀목을 상실하고 있었음을 제시한다. 바로 이런 상황들이 농민들을 요세푸스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대중 운동으로 내 몰았다. 농민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보다 덜 위험한 약자의 무기"를 사용함으로 "농민들과 그들로부터 노동, 식량, 세금, 소작료 및 각 종 이자를 취하는 자들과 사이에 평범하지만 꾸준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예수의 많은 비유가 보여주듯, 갈릴리와 유대 농민들은 이런 위험에 처해 있었다.
전통(Traditions)과 대본(Transcripts)
고급 농경사회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인류학자들이 칭하는 "상류전통" (great tradition)과 "하류전통"(little tradition)인데, 이는 보통 읽고 쓰기와, 말하기 능력에서 나타나는 분리(경계선 긋기)와 일치한다. 소수가 거의 대부분을 취하고 다수가 거의 아무 것도 갖지 못하는 1세기 갈릴리와 유대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극적이며 철저한 불평등은 정당성과 어느 정도의 신비화 작업을 요한다. 이런 이유로 지배자들이 그들의 관념적 세계관을 자신들이 다스리는 농민과 고용인들에게 주입시키기까지는 어떤 식의 지배체제도 온전하지 못하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수단은 일종의 "상류전통" 혹은 "위로부터"의 역사를 만들고 선전하는 일이다. 도시 지역에서 출발한 이 전통은 문학작품을 통해 형성되는데, 왜냐하면 구전(口傳)의 비문학적 문화권인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활자화된 문서란 권력과 권위의 기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상류전통은 여러 형태를 통해 그 후견인들을 사로잡는데, 그들은 유일하게 이 전통에 가까이 하여, 그 울타리를 통제하며, 해석과 적용을 결정한다. 갈릴리와 유대의 경우 예루살렘 성전의 소수의 성직자들, 그들의 가신(家臣)인 서기관들, 바리새인과 같은 정치적 파당이 이런 임무를 담당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상류전통은 비록 토라 이야기를 읽을지라도 시골 농민들을 지지하거나 그 권익을 보호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할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러했음으로, 사회계급 계층이 아래로 향할수록―엘리트 계급에서 가신으로, 기술직 고용인으로, 농민으로―상류전통은 그 힘을 읽고, 대항(對抗)전통인 하류전통의 형태로 등장하게 된다.
농민 사회의 마을, 읍, 부락에 중심을 둔 지방 특유의 형태를 지닌 하류전통은 사회 계급제도에서 지배자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이런 문화적, 지형적 거리감은 하류전통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스콧트(Scott)가 지적하는 대로, 이 하류전통은 "농경사회에서 농민들이 귀하게 여기는 독특한 패턴의 신앙과 행동"을 보여준다. 더욱이 이 전통은 농민들이 상류전통을 자신들의 생애와 문화를 지지하고 보존하는 한도 내에서 선별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하류전통은 아래로부터 본 역사를 담고 있다. 마을 공동체적 지혜의 보고(寶庫)를 공급하는 외에도, 이 하류전통은 소수 지배계급의 상류전통이 부과하는 세에 항거할 수단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이 아무리 힘써 노력할지라도, 자신들의 세계관을 농민들이 억지로 따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스콧트가 말한 "절충된 종속"을 실행할 방법을 찾아내는데, 이 협상을 통한 종속은 지배자들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헤게모니는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니다.
비록 처음에는 상류와 하류 전통이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하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이 두 전통은 종종 같은 주제를 다른 관점에서 다룬다. 예루살렘 대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이름의 시조로 여기는 반면, 대중적인 이스라엘 전통은 아브라함을 (그런 의미로) 합법성을 부여하는 인물로 보기를 거부한다(눅/Q 3:9).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아브라함을 빈민의 구원자로 그린다. 마찬가지로, 이 두 전통들은 모세의 언약, 안식일 전통, 출애굽과 유월절의 의미, 성전과 십일조 그리고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대제사장들에 대해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 두 전통은 공통의 기반을 논하고, 자신들의 독특한 강조점을 만들어 내어, 갈릴리와 유대에서 신학적, 이데올로기 논쟁을 위한 틀을 제공했다.
엘리트 계급의 상류전통과 땅의 백성들의 하류전통은 어찌 보면 똑같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으나, 피지배자보다 지배자들을 유익하게 하는 권력 관계에서 이런 경우는 쉽지 않다. 사실 압제당하고 있는 그룹의 하류전통의 반향(反響)을 "들을 귀"와 "볼 눈"이 있어야 한다. 실제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는 정치적 환경에서 우리는 세 개의 다른 종류의 정치적 담화를 찾을 수 있다. 첫 째는 지배자와 지배 계급의 눈으로 본 사건과 배열을 담은 "공개적 대본"(public transcript)으로, 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간에 일어나는 공공연한 접촉을 기술하는 속기법"이며, 다른 말로는 "지배 엘리트 계급들이 스스로 보여 지기를 원하는 자화상이다." 포도원의 일꾼들 비유의 마지막 지주의 연설(마 20:1-16)에서 우리는 이런 자화상의 예를 볼 수 있다. 지배자가 통제하는 공식적 대본은 현(現) 정치 체제를 이해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정당화시키는 범위 내에서 상류전통을 포함한다. 엘리트 계급이 작성한 대본에 따라 정치적 극장 무대에서 억지로 배역을 맡아야 할 때, 힘없는 자들은 고분고분 따르는 척 가장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만날 수 있는 두 번째 담화는 "숨겨진 대본"(hidden transcript)으로 이는 핍박을 당하는 이들이 무대 밖에서, 그들의 주인과 주인의 가신들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 나누는 대화이다. 숨겨진 대본이야 말로 농민들이 진짜로 믿지만 소심하여 공공연히 표현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을 추출(抽出)해낸다. 그 결과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데, 이는 대부분 엘리트 계급이 어떤 종류의 공적인 반대도 묵인하지 않고, 어떤 종류의 파괴적 담화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숨겨진 대본은 하류전통의 많은 주제들을 다루는데, 담고 있는 특징적인 주제로는 "심벌의 타당성 문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와 꼬리표달기, 원인 분석과 비난, 그리고 지방역사에 당파적 의미를 주려는 호전적인 노력" 등이다. 당연히 이런 주제들은 공적인 담화에서는 다룰 수 없는 사항이지만, "대안적 윤리 세계"나 농촌의 "잠재적인 표준 소문화권"에는 숨겨져 있다. 이것들은 "천년세계, 대중 극장, 민담(民譚), 서민 이야기, 신화, 시, 농담과 노래"의 형태를 취하며, 우리는 여기에 비유를 추가할 수 있다.
만일 하류전통과 숨겨진 대본이 무대 밖에서 구전으로 남아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들 주제에 가까이하든가 확인할 수 있겠는가? 억압받는 계급 중에서 발견되는 제 삼의 정치적 담화가 없었다면 이런 문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 담화는 엘리트 계급의 공식적 대본에 우연히 표현되거나 혹은 엘리트 지배계급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농민들이 무대에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스콧트는 이 제 삼의 정치적 담화를 "공적인 장소에서 일어나지만 이중의 의미를 갖거나 또는 배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변장과 익명의 정책"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사실상 "일부 삭제된, 애매모호하고 암호화된 형태의 숨겨진 대본이 언제나 종속된 그룹의 공적인 담화에 나타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장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가 토라에 성문화된 이스라엘 판 시내산 언약에서 발견되는 정의와 심판의 주제를 가지고 하류전통의 입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관계했다는 점이다. 예수는 그렇게 함으로 논쟁의 장으로 들어섰으며 역사에 또 다른 파당적 의미를 부여했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농민 교육
예수의 비유들을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이 비유들이 "심벌의 적합성 문제,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해, 원인 분석과 비난, 그리고 지방역사에 파당적 의미를 주려는 호전적 노력"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를 살피는 일이며, 간단히 말해 예수의 비유가 일 세기 "억압받는 이들의 교육"에 어떤 공헌을 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보다 넓은 정치적, 신학적 프로그램으로써, 정치적 분파를 이루는 운동의 초석이 되는 예수의 비유의 목적과 기능을 살핌에 있어, 브라질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연구는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프레이리의 비정통적 교육은 그가 농민 문맹자에게 글을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전통적인 교사직을 내놓음으로 시작했다. 농민들도 읽고 쓰는 능력을 취득할 수 있다는 그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리는 그의 초기 노력이 다소 고지식하여 교육이 갖는 정치적 요소를 간과했음을 시인했다. 프레이리는 이런 실수를 마을 농민들과 열심히 일하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놀랍게도 농민들의 지배자들은 마을 농민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이미 엘리트 세계관을 "제방 교육"(banking education)이란 형태로 깊이 심어 놓았음을 프레이리는 깨달았다. 이 논문에서 소개한 단어를 빌어 표현하면, 이 침전물은 엘리트들의 공개적 대본을 통해 알려진 일종의 상류전통의 모습이다. 프레이리의 농촌 학생들은 지배자들의 부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가난을 설명하는 세계관에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은 하느님의 계획을 반영하고 있으며, 농민들은 하느님이 그들에게 맡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배웠다. 변화의 조짐이란 없었다. 미래는 현재와 같이 정해진 것이다. 농민들이 이런 사상적 감옥에 갇혀 있는 한,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역사라 부를 만한 역사도 없으며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그들의 역할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 또한 갖고 있지 않음을 프레이리는 간파했다. 자신들의 의견을 용기 있게 말해야 하는 극히 드문 경우에 폭력과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문화권 속에 태어난 그들은 이런 침묵의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이런 비관적인 출발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리는 4 단계 교육을 계속했으며, 이 중 3 단계가 이 논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 째로 프레이리는 자신의 교육 안(案)이 농민들의 콘텍스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신념아래 농촌 마을에 현장 참여 관찰자(participant-observers) 팀을 보내 그들이 농민들의 눈으로 세상보기를 배우게 했다. 그들은 농민들의 말과 어법을 배우고 그들의 말 속에 독특한 아름다움과 지혜를 발견했다. 이런 깊은 경험으로부터 팀원들은 "생성적인 말"을 수집하여 상류전통의 침전물과는 매우 다른 농민들의 "주제/화제를 담은 우주"(thematic universe)를 만드는 초석이 되게 했다. 다른 말로, 팀원들은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대본에 의해 고취된 농민들의 숨겨지고 묻힌 하류전통의 형태와 때로는 자취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둘째로, 이런 생성적인 말과 주제에 기초하여 프레이리는 그가 "성문화(成文化)된 것들"이라고 칭한 것--농민들 생활에 반(反)하고 문제시 되는 시각적 그림들--을 비교했다. 그는 이런 성문화된 것들(codifications)을 그가 "문화권"(culture circle)이라 칭한 한 떼의 마을 농민들에게 제시했다. 성문화된 것은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자극제였으며, 이것은 끝없이 열려 있었다. 성문화 된 것과 문제를 제시하는 질문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배움의 과정을 시작하게 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며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누가 누구 덕에 이익을 보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럼으로 대화는 일시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며 또한 종교적이다.
이런 성문화된 것을 조사해 가면서, 농민들은 자신들 세계의 해설자들이 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 변화불가능 속에 주어진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만들어 낸 개조 가능한 구조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성문화 작업에 대한 논의는 점차 분석적인 대화를 이끌어 내고 농민들로 하여금 표면적인 특징에서 보다 심층의 불분명한 문제를 탐구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어떻게 그들의 빈곤이 엘리트들이 축적한 부의 결과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들의 가난은 불변의 필연성도 아니고 신의 심판도 아닌 변할 수 있는 인간의 우연성임을 알게 됐다. 사회에 대한 기술은 사회 분석으로 옮겨졌다. 마을 사람들이 특정의 문제를 일으키는 독특한 성문화된 것들을 배우는 동안, 그들은 이런 식으로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법을 또한 배우고 있었다. 그들은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는 통찰력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프레이리나 그의 현장참여 관찰자들이 몸으로 함께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신들의 세상을 이해하는데 달인이 되어 갔다.
교육의 세 번째 단계는 성문화한 것들이 드러낸 것을 탈성문화하고(decoding), 문제화하고(problematizing), 또 재(再)성문화하는(recodifying) 작업이다. 문제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는 고정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풀어야 하는 문제로 재연(再演)한다(re-present). 이런 과정을 예전에는 진리로 믿었던 것들을 탈성문화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 이 세상이란 수많은 해결책 앞에 놓인 문제투성이임을 폭로한다. 다른 말로, 농민들은 그들의 지배자들의 상류전통을 "탈성문화"(해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런 새롭게 정의된 문제들을 집단적으로 논의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이 되어 자신들만의 역사를 만들 힘을 얻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하류전통을 적절히 유용하여 세상을 "재(再)성문화"하고 있었다. 프레이리는 침묵의 문화를 깨고,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세력을 탈성문화하고, 변화된 세상의 이상을 재성문화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의식화"(conscientization)라고 불렀다.
만일 배움이 행동을 유발시켜야 한다면, 단지 당면한 문제를 탈성문화하고, 문제화하고, 재성문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프레이리는 자신의 학생들로 하여금 농민들이 그들의 지배자들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을 나열한 "제한된 상황"과 그 도전을 가능케 하는 행동을 담은 "제한된 행동"을 성문화하도록(codify) 부추길 필요를 느꼈다. 이 일련의 사이클이 프락시스(praxis)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반성과 행동"을 수반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묘사한다. 이 교육법은 두 가지 주요 결과를 낳았다. 첫째로 현장참여 관찰자들은 하류전통이 이미 농민들 마을에 현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둘째로 그들은 압제받는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런 전통이 앉고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 하여 저항과 정책성 확립에 이비자할 수 있는지를 가르칠 수 있었다.
프레이리의 압제받는 이들을 위한 교육법은 지난 20세기 후반 30여 년간 하나의 운동이 되었는데, 이는 그의 방법은 다른 곳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며, 실제로 독재 정권이 농민들을 지배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소개되었다. 그의 연구는 여러 상황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데, 이는 이 연구가 권위주의적 정권하에 있는 농민들을 북돋우는데 필요한 일련의 요소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적용성이 성공에 일익을 담당했다. 프레이리의 교육이 성공한 이유는 이것이 프레이리 자신에 의존하지 않고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 농민들의 능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의 독특한 이해나 새로운 사상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배우는 법을 배웠으며 그래서 자신들의 기술을 다른 상황과 문제들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기술은 교육이 어떤 운동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다. 프레이리나 예수와 같은 지도자가 이런 과정을 창시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행할 수 있는 공동체 혹은 마을 중심의 활동이었다. 선생에서 교육 자체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이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말로, 교육 자체가 선생보다 오래 살아남아 운동의 형태를 낳았다.
위기 속의 갈릴리 농민들의 선생, 예수
예수의 비유야 말로 바로 그런 식으로 작용했으니, 곧 그 생애 동안 농민들과의 대화 속에 드러난 구두(口頭)의 성문화 작업이다. 프레이리가 시각적 성문화 작업을 시도했듯이, 예수는 우리가 비유라고 부르는 구두의 성문화 작업을 사용했다. 현대 해석학자들은 비유가 자체로 독립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를 해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예수의 비유는 농촌을 배경으로 다른 배움의 형태를 통해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었다. 여기서 해석이란 공동체 활동이었다. 프레이리는 마을 사람들을 "문화권"으로 모았지만, 예수는 규칙적인 지방 모임을 비유로 가르치는 기회로 삼았다. 비유는 가르침의 시작이지, 그 과정의 끝이 아니었다. 오늘날 종교와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분리시키려는 서구의 노력과는 달리, 비유와 논쟁은 마을 농민들이 그들의 일정한 모임에서 다루는 모든 관심사를 포함했을 것이다--당시 공회는 건물이 아니라 마을에 관련된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다루는 공동체 모임이었다. 비유가 이런 식으로 작용했다면, 비유를 말하는 주된 임무는 농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보다 큰 가르침의 일부분이었다. 농민들의 지배자들의 행실이 어떻게 그들의 마을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인식을 비유가 구체화했듯이, 비유는 또한 예수운동을 형성하는데 활기를 북돋우었다.
분수령, 토라와 언약의 위반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예수의 비유는 부유하고 권세를 갖은 엘리트 그룹과 상황이 악화일로를 달리는 가난한 농민들 간에 놓인 거대한 분수령을 구체화한다. 이 비유는 궁핍한 거지의 운명과 부유한 엘리트의 행운을 이 세상과 저 세상에 병행해 놓고 있다. 다가올 세상에서의 기대치 않은 방향전환은 이런 차이를 재연하는데(re-present), 빈부의 일반적 견해를 파헤치고(탈성문화하고) 그들 간의 관계를 재(再)성문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 문제를 제시한다(문제화한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살아 있을 때에 너는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불행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26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오지도 못한다.' 부자가 말하였다. '조상님, 소원입니다. 그를 내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가 다섯이나 있습니다. 제발 나사로가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고통 받는 이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자가 말하였다. '아닙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서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날지라도, 그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눅 16:19-31)
비유(눅 16:19-31)는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6:19-22 장면 1: 부자와 가난한 자, 질서
16:23-31 장면 2: 부자와 가난한 자, 무질서
처음 장면은 사치 속에 사는 부자의 삶과 절망적인 빈곤의 상태에 있는 궁핍한 자의 삶을 대조해 보여준다. 노련한 이야기꾼으로 또 성문화하는 사람(codifier)으로서, 예수는 전체의 그림을 단지 몇 가지 낱말을 빌어 솜씨 있게 표현한다. 부자는 "자색 옷"(가장 비싼 색깔로 최고의 엘리트 계급과 왕족들이나 누릴 수 있었음)과 "고운 베옷"(이집트에서 수입한 옷감)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며"(단지 축제일뿐만이 아님) 가난한 자와 접촉이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대문이 그를 자기 집 주변 길가에 널린 거지들로부터 보호). 가난한 거지는 헌데 투성이 몸이었으며(영양실조의 결과), 늘 배고픔으로(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함),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와 부자의 집 밖에 던져진 쓰레기 더미를 놓고 길가의 개들과 절망적으로 싸워야 했다(그 와중에 개들이 그의 헌데를 "핥았다"). 장면 1의 끝부분은 고결한 삶의 극치로 부자는 영예롭게 장사지냄을 받고, 반면 나사로의 시체는 길에서 주운 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쓰레기 더미에 던져진 것을 암시한다.
이제까지는 모든 일이 기대한 바와 같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나사로--얄궂게도 이 이름은 "하느님이 도우시다"는 뜻--가 향연의 빈객(賓客)처럼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고, 반면 부자는 하데스(Hades)의 화염 속에 있음을 들을 때, 청중들은 충격 속에 잠기게 된다. 여기서 하데스를 기독교의 "지옥"(hell)과 같은 개념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지 죽은 자들이 가서 부활을 기다린다든지 삶 동안 무시했던 교훈을 배우는 장소이다. 이런 의미에서 긴 두 번째 부분은 "압제자의 교육"이라 칭할 수 있다. 비유의 이야기 형식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의 존재는 바로 부자가 풀어야 하는(decode) 성문화된 것(codification)이다. 아브라함은 부자를 가르치고자 하나, 부자는 자신의 안건만 주장할 뿐 아브라함이 제시하는 바를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 나사로를 시켜 물을 보내소서! 나사로를 내 다섯 형제에게 보내소서! 그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사로가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가정 하에 나사로를 종이나 추종하는 메신저로 볼 뿐, 향연의 귀빈으로는 분명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의 고통을 감하지고 그의 요구에 응하지도 않는다. 그의 계획은 이런 듯하다: 불을 좀 더 세게 하여, 그가 어떻게 반응하나 보자.
압제자의 교육을 통해 아브라함은 나사로도 모든 면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부자가 깨닫도록 유도하고자 한다. 아브라함이 부자를 부를 때 친족 관계의 말을 쓰고(테크논, te,knon; 아이), 또한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파테르, path,r)라 부름에 주목하라. 물론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또 부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부자와 나사로는 형제가 되는데, 이 점을 부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아버지와 다섯 형제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그의 친족 개념은 계급 연대와 자신의 이익에 기초한 것이다. 만일 나사로가 형제였음을 부자가 깨달았다면, 비유의 첫 번째 장면은 부끄럽고,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토라가 가르치고 있는 바이다. 예루살렘에서 만들어진 상류전통조차도 땅은 야훼의 선물이며(레 25:23) 땅의 소산은 축적의 대상이 아니고 함께 나누어 모두가 넉넉함을 누리게 한다는 초기 이스라엘 언약 전통을 담고 있다(레위기 25장; 신 15:1-18). 하지만 부자와 그 계급은 땅의 부를 축적하고 세상의 나사로와 같은 이들을 참혹한 몰락으로 밀어붙이며, 스스로는 이름의 시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늘 주장해 왔다. 나사로의 이름을 묘하게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손님접대의 임무--아브라함이 이름을 얻게 된 덕목--를 완수하는가 보려고 그들에게 보내진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나사로가 재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나타난다. 모세는 언약의 원칙을 가르쳤으며, 그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형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거나 압제적인 지배자가 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예언자들은 거난한 자를 착취하는 왕과 왕족 관리들을 비난했다(예를 들면, 사 1:16-17; 5:6; 렘 5:23-29; 21:11-14; 암 2:6-11; 5:10-24; 미 3:1-3, 9-12). 그러나 아브라함의 호소는 꽉 막힌 귀와 닫힌 맘에 떨어진 듯하다. 하데스가 지옥은 아닐지라도, 부자가 회개하고 나사로를 형제로 받아들일 수 없거나 거부하는 점으로 볼 때, 빠르게 지옥의 모습을 띠어간다.
이런 방향으로 읽을 때, 비유는 헤롯 안티파스의 갈릴리 그리고 대제사장이 다스리던 유대와 예루살렘에 존재했던 두 층의 사회를 성문화하고 있다(codifies). 대여금에 이자를 취한다든가 부당한 세금을 요구하는 것과 같이 모세의 언약원칙을 깨는 뻔뻔함이 로마 대리 통치자들 하에서 커다란 빈부의 격차를 가져왔다. 부정이 불평등을 낳았다. 예수의 비유는 부정과 불평등의 원인을 성문화하고 이것들을 풀어야 할 문제로 제시한다. 이 경우 중요한 힌트가 아브라함과 부자와의 대화 속에 나타난다. 넓게 이해되는 친족의 개념에 입각한 사회관계의 회복만이 이를 깨들인 사회계급 제도를 대체할 수 있다. 계급사회는 토라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는 지배계급을 낳았고 갈릴리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억압적인 빚의 수단을 거쳐 그들의 땅을 빼앗는데 힘을 다했다. 친족관계의 상실은, 실제든 가상이든, 나사로와 같은 이들을 빈곤과 몰락으로 내 몰고, 이 거대한 틈은 자라서 결국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갈라놓았다. 그들이 함께 누렸던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의 기저가 무너졌다. 만일 성문화 작업에서 징후가 절망상태의 거지라면, 그는 또한 갈릴리와 유대를 강타한 사회적 질병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유는 이 커다란 틈(빈부의 분수령)을 문제화했으며, 그 의미를 재(再)성문화했다(recodified). 이는 어떤 것의 일반적인 질서를 말함이 아니고("가난한 자는 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언약을 신중하게 다루지 못함을 가리킨다. 부자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가난이 하느님으로부터의 심판 또한 아니다. 나사로가 빈객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아브라함의 향연장에 드러나는 무질서를 대할 때 (현재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일반적인 노력이 명백해진다. 어떻게 거리의 쓰레기 같은 나사로가 빈객이 될 수 있는가? 사후세계가 잘못되었든가 아니면 이 세상에 무엇인가 끔찍이도 잘못되었다. 끈기 있게 탐구한다면, 비유는 빈부의 관계를 드러내며, 결국 세상의 나사로들을 거리의 폐품과 같은 거지로 몰아 부유한 자들로 더욱 부유케 함으로써 이런 분수령을 유지하는 사회제도를 폭로한다. 나사로는 친족관계와 마을 생활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대표적인 인물로, 제도의 부차적 손실의 일부로 사회적 죽음으로 유배당한 자이다.
만일 예수가 억압받는 이들의 교사로서 이 비유를 말하고 또 농민들 마을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했다면,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제시된 사회상을 탈성문화하고(decode) 부자의 대문 앞에 "던져진"―수동형으로 아마도 하느님의 계획적인 행동을 암시―거지의 존재를 문제화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수많은 그의 비유에서처럼, 예수는 갑부와 끔찍이도 가난한 자를 같은 이야기에 포함시키는데, 이런 상황은 자신의 생애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어떤지 또 서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함이다. 사회제도의 정점에 축적된 부는 밑바닥의 엄청난 빈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운명의 전환과 이어지는 압제자를 향한 교육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부자의 태도를 탈성문화하고(파헤치고) 어떻게 아브라함이 모세의 말과 예언자들의 도(道)를 따라 세상을 재성문화하는지--간단히 말해, 마을 농민들의 투쟁을 말하기에 합당한 친족과 손님접대의 바른 이해를 회복함을--깨닫도록 격려한다.
비유가 예증하는 대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은 매우 중차대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부자 계급의 영광스런 조상으로, 그 이름으로 말미암은 정체성이 이스라엘의 지배자들을 정당화하는 본보기였는가(눅/Q 3:7-9) 아니면 그의 청지기 엘리에셀과 더불어 세상의 나사로들의 친구요 향연의 주인으로 그들을 반기고 이 생애에서 거부되었던 환대를 회복하는 자였는가? 아브라함이 향연의 주인이고 나사로가 빈객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눅/Q 13:28-29).
품삯 받는 날 희생 감수하기(Paying the Price on Payday)
포도원의 일꾼들 비유(마 20:1-16)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를 문제화할 목적으로 포도원 이미지에 의존한다. 이 비유에서 지배계급의 일원과 노동력을 파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하루벌이 일꾼이 나란히 등장한다. 아주 절망적인 상태의 하루벌이 일꾼들은 마을과 친족들이 줄 수 있는 어떤 모양의 보호망도 다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들은 종종 농가에 태어난 둘째 혹은 셋째 아들이었다. 자신들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할 때, 그들은 집과 마을을 떠나 자신들을 스스로 지키도록 내버려졌다. 일단 하루벌이 일꾼들이 그들의 보호망을 잃게 되면 그들의 상황은 위급하게 되고, 그들은 농경사회에서 영양실조 합병증 또는 질병으로 죽을 때까지 간헐적으로 일하며 "소모품"이라 불리는 그룹에 속하게 된다. 하루벌이 일꾼들은, 특히 자신들의 땅을 상실했을 때, 일자리가 있을 때에만 일했고, 일자리가 없을 때에는 구걸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삶이란 문자적으로 막다른 골목이었다. 상황을 더욱 나쁘게 하는 것은, 이들 절망적인 하루벌이 일꾼들이 다른 농군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상태인데, 농군들은 자신들의 땅을 경작하는 외에 최저 생계수단을 보충하기 위해 하루벌이 일꾼들처럼 일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그는 하루에 한 데나리온으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또 아홉 시쯤에 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서 있었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일을 하러 떠났다. 주인이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 나가서 그렇게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에 주인이 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온종일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이 되어,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을 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러니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들은 받고 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그대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그대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대 눈에 거슬리오?'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마 20:1-20)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루벌이 일꾼을 고용하려고 시장으로 나가는데, 아마도 포도를 수확할 일손이 더 필요한 듯하다. 좋은 포도주를 만들 포도를 얻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내에 포도를 수확해야 하며, 그래서 하루벌이 일꾼들이 필요했다. 더 많은 일꾼들을 고용하려고 주인이 여러 번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아, 그는 큰 포도원을 갖고 있었고 풍작을 이루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풍작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눅 12:16-21)?
여기서 엘리트 지주(地主)가 하루벌이 일꾼들을 고용하려고 몸소 나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비유 후반부에 등장하는 자기 관리인에게 이 일을 맡겼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하지만 잘 그린 정치만화처럼, 암호화된 비유(parable codification)가 설정한(codified) 장면에서 지주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 청중들이 맞을 마지막 대결을 준비한다. 이런 식으로 예수는 평상시 보이지 않는 엘리트들을 보이게 만들었다.
시장에 계속 나가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지주는 일꾼들을 싼 값으로 고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일꾼들과 한 데나리온(노동자의 평균 품삯)에 합의하고, 두 번째로 아고라(avgora,, 시장)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당한(디카이오스, di,kaioj) 품삯을 주겠다며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다. 오후 다섯 시에(원문에는 열한번째 시간--역자주) 주인은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시오"라 명령할 뿐, 품삯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점으로 미루어, "포도원 주인"은 일꾼들의 품삯을 스스로 정한다. 일꾼들이 많다는 것은 값이 싸다는 것은 의미한다. 날이 저물어서도 어떤 일꾼들은 여전히 시장에서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비유는 다음의 세 장면을 연출한다:
20:1-7 장면 1: 하루벌이 일꾼 고용
20:8-10 장면 2: 품삯 주기
20:11-16 장면 3: 일꾼들과의 충돌
비유의 첫 장면이 포도원 주인의 활동으로 시작했듯이, 둘째 장면 역시 주인이 자기 청지기에게 명하는 말로 시작한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품삯을 치르시오"(20:8). 품삯을 주는 보통 순서는 먼저 온 사람들에게 먼저주고,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나중에 주는 것이지만, 주인을 그 순서를 바꾸었다. 이렇게 한 것은 맨 먼저 고용된 일꾼으로 하여금 맨 나중에 고용된 일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고, 수확의 어려운 수고("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 20:12)의 정도에 따라 품삯의 일부를 받지 않았음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맨 먼저 고용된 일꾼들의 불평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자신들의 수고가 욕되었다고 믿었다.
품삯 일정표에서 주인은 맨 먼저 고용된 일꾼들의 온종일 수고나 맨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의 한 시간 수고가 똑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모욕이다. 보통 하루벌이 일꾼들은 침묵을 지키고(침묵의 문화) 무대 밖, 지배자들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 그들이 당한 모욕에 대해 불평을 토한다. 그러나 이번의 모욕은 너무 부끄럽고 곤혹스러운 것이라, 엘리트가 있는 무대에서 마주 대항할지라도, 반응을 보여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격하됨에 동조하는 것이 되는데, 자신들의 수고의 비교적 가치에 순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하루 품삯은 데나리온 아래로 떨어져 그들을 보다 심각한 빈곤과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들답지 않게 기대와는 달리, 세 번째 장면이 하루벌이 일꾼들의 주도로 등장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당한 노동의 부끄러움에 반응을 보인다. 주인의 반응은 신속하고 날카롭다. 먼저 그는 일꾼 중 하나를 택해 예로 삼는다: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둘째, 그는 한 데나리온으로 예정된 계약을 상기시킨다: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그대는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이 말은 양자가 상호 합의하에 임금을 정한 것을 뜻하나, 사실은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누구든지 이를 받아들이는 자를 고용했을 것이다. 셋째, 주인은 일꾼들을 포도원에서 내어 쫓는다: "그대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이는 배척과 피하는 행위로, 일꾼들이 다시는 그에게서 일거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정점에 달한 주인의 반응이 가장 중요한데, 왜냐하면 주인이 자신의 행위를 신비화하고, 관대한 행위로 묘사함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다루고 있는 문제가 더 이상 품삯이 아니라 주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선물임을 주목하라. 그의 수사적인 질문--"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은 누구나 그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만일 그렇다면, 일꾼들은 주인의 후함에 대하여 불평하는 꼴이 된다. 헬라어 의문문 형식은 번역본이 제시하는 것보다 더 핵심을 찌르고 있다. 주인은 "또는 내가 선함으로, 그대 눈이 악한 것이요?"(저자역). 이 비난은 하루벌이 일꾼들은 그들의 악함을 나타내고, 주인의 선함을 강조한다.
모든 성문화된 것이 그렇듯 만일 비유가 이 질문으로 끝난다면, 농민 청중들은 탈성문화, 문제화, 재성문화 작업 등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땅이 주인과 주인의 계급에 속해 있다는 주장을 탈성문화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땅은 야훼에게 속하고 그는 이것을 땅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토라는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언약이 옳다면, 지배계급이 자신들과 그들 계급을 위해 야훼의 특권을 가로채고 있음을 드러내고 심판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깨닫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렇다고 볼 때, 비유에서 주인은 이런 통찰력을 "악한 눈"(거짓 의식)의 결과로 매도하며 내쫓고자 한다. 지주의 조용한 주장에 대한 농민들의 폭발적 분노를 문제화시키는 비유를 통해, 농민들의 지주의 교만한 주장을 탈성문화 하고 또 "악한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과 "깨닫는 눈"(비판적인 의식; Q/눅 10:24; 막 8:17-18을 보라)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재성문화 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관대함을 보인다는 주인의 신념은 토라의 나눔의 원칙(extension principle)―가진 자들은 땅의 풍요로운 수확을 갖지 못한 자와 나누고 자신들을 위해 축적하면 안 된다―에 근거하여 판단되어져야 한다. 반대로, 주인은 영양실조를 유발할 임금 밖에는 주지 않으며, 토라의 나눔의 원칙을 비웃고 있다. 주인의 관대함이란 상상력의 결과일 뿐, 하루벌이 노동자들에 대한 그의 착취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르는 분수령의 골을 깊게 했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 청렴한 생활을 살지도 않으며, 그와 그의 계급은 토라에 기초한 정의 실현에 큰 거침돌이 된다. 억압 받은 이들의 교사의 손에서, 비유는 땅의 소산이 재분배되어야 하는 품삯 받는 날, 포도원처럼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비난을 평가하는" 노력을 자극한다. 비유에서 주인은 소수를 지지하기 위해 다수를 빈곤으로 내 모는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다. 자신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권력의 횡포에 대항하여, 하루벌이 일꾼들은 권세 앞에서 진실을 말하게 되고 그 중 하나는 그 값을 치른다. 20:16(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에 부착된 이 말은 아마도 비유에 대한 초기 교회의 이해를 반영하거나 혹은 일꾼들에게 연설하는 주인이 얽어맨 주문(呪文)을 깨뜨리도록 청중을 선동하는 예수의 도발적 행동을 반영한다.
이 비유는 그 속에 내포되어 있고 또 주인의 마지막 반론 속에 표현된 신비화된 것들에 대해 농민들을 자극하여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성문화 작업으로서 역할을 잘 담당했을 것이다. 주인은 자신의 욕심을 관대함으로 신비화시켰으며 또 토라의 의미를 왜곡하여 그의 땅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루벌이 일꾼들이 실제 "깨닫는 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들의 항의가 "악한 눈"을 가진 결과라고 매도하며 내어 쫓았다. 비유의 역동성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빈곤의 원인을 밝힐 수 있고 땅의 가난한 자에 대한 비난을 재평가하게 된다. 이 논쟁적인 비유 속에서 공개적 대본과 사건의 공식적 의견이 가구주(오이코데스포테스, oi,kodespo,thj)에 의해 표현되고, 한편 하루벌이 일꾼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폐기처분하는 가구주의 오만함을 드러냄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정죄케 만든다. 비유를 탐구하면서, 농민들은 "포도원 주인"의 거짓된 의식과 하루벌이 일꾼들의 비판적 의식을 구별하게 된다. 농민들은 별로 말이 없지만, 지주가 그들의 항변을 묵살하고 그들에게 악한 눈을 가진 자들이라고 오명을 씌우려 하는 점을 들어 그의 거짓된 의식을 유도해 낸다.
결국 누구의 포도원인가?
악한 청지기 비유(막 12:1-12 // 마 21:33-46; 눅 20:9-19)는 이사야 5:1-7을 넌지시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예수의 비유 초반에 있는 이미지는 분명 이사야 5:1-2를 반영하며, 이는 예언서에서 발견되는 세 개의 별개의 문학적 단위―(1) 2:1-2, 사랑의 노래; (2) 5:3-4, 재판비유와 탄원; (3) 5:5-7, 심판 신탁―중 첫 번째이다. 사랑의 노래로 시작한 것이 이스라엘의 족속과 유다 사람을 기소하는 심판형식으로 끝맺는다. (히브리 원문에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사람"은 둘 다 단수로 쓰였으며, 이는 두 왕국의 지도자를 암시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문으로는, Marvin L. Chaney, "Whose Sour Grapes? The Addressees of Isaiah 5:1-7 in the Light of Political Economy," in Semeia 87: The Social World of the Hebrew Bible [ed ; Atlanta: Scholars Press, 1999] 105-122를 보라--역자 주.)
[야훼께서]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5:7)
이사야에서 문제는 포도원이 올바른 수확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야훼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5:2b). 예수의 포도원 비유에서 문제는 포도원을 관리하도록 부름 받은 소작인의 성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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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들은 왜 예수를 따랐는가.pdf (379.5K) | DATE : 2009-11-10 12:21:57 | 31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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