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첨단 문명시대 지식인의 역할[LA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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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문명의 발달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 변화가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 듯 실시간으로 전파되어 이젠 어느 시골구석에 살더라도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됐다.
특히 요즈음은 전자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이 다함께 서서 같이 흘러가는 아찔한 느낌이다.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의 종말'에서 과거 지식인은 미래를 내다보는 견자(見者)였으나 오늘의 그들은 사방에 발을 뻗쳐서 주목은 받지만 복잡한 현실문제를 정리 분석할 수 있는 연금술사가 아니어서 현실과 미래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식인에겐 사회의 문제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해박한 해설로 일반 대중에게 알려주어서 이해와 지향할 방향을 돕는 오브리주가 있을 것이다.
이 사회의 가치가 된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도 관심도 판단의 능력도 상실한 방관자의 존재로 머물러 있는 일반인에게 지식인의 역할이 한층 더 무거워진 것이다.
최근 뉴스에 많이 오르내린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과 서울대 총장 및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운찬 박사는 어느 면에서 보나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다.
서남표 총장은 2006년도 총장 취임 당시 기자회견에서 카이스트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만들 것이라고 의욕에 찬 소견을 발표했다.
세계 일류대학으로의 대망을 위해 '징벌적 차등 등록금제'와 '모든 강의를 영어'로 라는 그의 세계화 교육은 목적은 찬란한데 수단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근 학생 4명과 교수 1명의 자살 사건으로 그의 퇴진까지 거론되었다. 그의 징벌적 차등 등록금제는 학생들에게 심리적인 불안과 압박을 주었다. 오히려 워싱턴DC의 교육감을 역임한 미셸 리의 어프로치처럼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인센티브 방법을 적용했다면 학생 자살은 막을 수도 있었고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정운찬 전 총리는 대기업의 초과이윤 분배문제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이념을 제시했다가 대기업 회장과 국회의원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특히 '신정아의 책' 판매전략과 관련되어 사실여부를 떠나서 그의 선비 같은 위상에 치명타를 입었기에 파워 폴리틱(Power Politic)의 전략 전술의 한계를 넘기기가 어려운 것 같다.
미국의 양심으로 회자되는 노엄 촘스키는 한때 미국과 소련을 싸잡아 독재라고 비판하고 대기업의 폭리를 폭로 미국 내부정치의 치부에 대한 공격자로 명성이 높았지만 이제는 오염된 사회에 공기청정기 같은 그의 주장은 하나의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오히려 신개념의 지식인으로 등장하여 주목받고 있는 것은 금융자본주의의 첨단주자인 조지 소로스나 워렌 버핏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지식인의 종말론까지 나도는 전자 문명시대다. 광속으로 변하는 시대 신자본주의 꽃이라는 금융자본주의는 국경이 없는 오픈된 경제환경에서 돈만 돈 되는 것만이 가치의 잣대가 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여백이 숨쉬는 역사의 리듬이 사라진 황폐한 정신문화를 먹고 사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행복의 필요조건으로 황금의 미소만이 숭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앞으로 편리함으로 인간을 사로잡는 첨단문명의 독화살이 어디로 향할까 몹시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