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혜원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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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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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미인도'

앳된 기녀를 모델로 그린 이 그림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까지 나타나는 섬세함과 단아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화폭에 담겨있다. 신윤복 자신역시 이 <미인도>에 '여인의 가슴속 정한까지 모두 그려낼 수 있었다'라는 화제를 남길 만큼 스스로도 만족해 했다.

신윤복의 `주유청강(舟遊淸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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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젊은이들의 봄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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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단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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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단오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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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월하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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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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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기방무사'

어느 여름 날, 기방에서 벌어진 낯 뜨거운 광경을 담고 있다. 갑자기 외출에서 돌아온 기생 때문에 당황해, 더운 날씨에도 기생의 계집종과 함께 두꺼운 이불로 몸을 급하게 가린 양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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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나라 조선. 이런 조선사회를 뒤흔드는 그림 한 점이 나타났다. 노란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그네를 타려는 여인의 모습과 가슴을 드러내고 목욕을 하는 여인들, 그리고 이들을 몰래 훔쳐보는 까까머리 동자승까지! 이처럼 파격적인 그림을 그린 이는 다름 아닌 화가 신윤복. 여인과 색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충격적으로 조선을 놀라게 한 신윤복은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그림을 그렸던 저속한 화가로 오인되어 왔다.

그런데 정말 신윤복은 저속한 수준의 화가였을까? 아니면 미적감각이 뛰어나고 섬세함을 가졌던 화가였을까? 이런 의문들을 풀기위해 그의 그림을 서양 미술 방식으로 분석해보았다. 또한 신윤복의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화려한 색이다. 당시에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색의 재료들이 없던 시대. 그렇다면 신윤복은 조선사회에서 이런 화려한 색의 재료를 어떻게 구하였을까? 신윤복의 대표작이자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그림들을 직접 분석하여 이런 의문점을 풀어본다!

   
신윤복은 향락의 모습만을 그려낸 저속한 화가였을 뿐이다?

신윤복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기방무사>. 어느 여름 날, 기방에서 벌어진 낯 뜨거운 광경을 담고 있다. 갑자기 외출에서 돌아온 기생 때문에 당황해, 더운 날씨에도 기생의 계집종과 함께 두꺼운 이불로 몸을 급하게 가린 양반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또한 술에 취해 웃통까지 벗은 채 기생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양반의 모습을 담은 그림 <유곽쟁웅>도 기방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가장 천한 신분이었던 기생들과 기방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신윤복은 왜 기생을 그림에 담았을까? 단순히 향락의 순간만을 그렸던 것일까? 아니면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화폭에 담기지 못했던 기생을 과감하게 등장시키면서 성문화와 향락문화가 급격히 늘어난 당시 조선의 세태를 풍자, 비판한 것은 아니었을까? 과감한 그의 그림들을 통해 신윤복의 조선에 대한 발언을 분석해 본다.

양반을 향한 통렬한 풍자를 하고 싶었다?

신윤복의 그림에 기생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대상, 바로 양반들이다. 철저한 신분사회 조선의 정점에 서있던 양반. 그러나 양반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성리학을 외치는 근엄한 얼굴과 한편으로는 기생들과 향락과 유흥에 빠진 이중적인 모습. 신윤복은 자신의 눈에 비친 양반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벌건 대낮에 무릎위에 기생을 앉힌 양반(*그림 청금상련) 어느 봄날 자신보다 나이 많은 계집종을 희롱하는 모습(*그림 소년전홍), 그리고 양반의 매춘행위까지(*그림 삼추가연) 그림에 담아 양반들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해학과 풍자를 잊지 않고 있다.

그림에 빠지지 않던 화려한 색(色), 조선시대 어떻게 이런 색의 재료를 만들어 사용했을까?

신윤복은 색채의 마술사였다. 그의 그림에는 의상, 배경 등에 색이 빠지지 않는다. 그의 그림이 빛나는 데는 여색과 더불어 바로 이런 화려한 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윤복의 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색의 재료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 그는 어떻게 화려한 색들을 그려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색채 전문가를 찾아갔다. 우선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단오풍정>의 빨간 치마. 그림 속 치마의 빨간색은 바로 수은 광맥에서 채취되는 천연안료 '주사'를 사용해 그렸다. 부적이나 인주에 쓰이던 주사가 그림 속 색의 재료로 쓰였던 것이다. 이런 광물재료 외에도 그의 그림 속 색 재료에는 놀라운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화려한 색채의 정체와 기법들에 대해 알아본다.

신윤복의 그림을 현대 회화의 방식으로 분석하다?

신윤복의 그림 속에는 배경이나 처마 선 등이 전체 화면의 틀을 고려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배경이 없던 이전의 풍속화와는 다른 점으로 신윤복의 강한 미의식을 보여주는 증거들인이다. 신윤복의 미의식을 현대 회화의 구도분석 방식으로 분석한 학자를 통해 신윤복의 탁월한 미의식에 대해 확인해본다. 신윤복은 채색을 할 때 색의 농담까지 철저하게 고려함으로써 더욱 강렬하고 눈에 확 띄는 그림들을 그려냈다.

걸작, 신윤복의 미인도

신윤복의 예술세계에 획기적인 선을 그은 작품 <미인도>. 앳된 기녀를 모델로 그린 이 그림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까지 나타나는 섬세함과 단아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화폭에 담겨있다. 신윤복 자신역시 이 <미인도>에 '여인의 가슴속 정한까지 모두 그려낼 수 있었다'라는 화제를 남길 만큼 스스로도 만족해 했는데... 어쩌면 신윤복, 그는 그림 속 여인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제작진은 신윤복 당시의 느낌을 재현해 보기 위해 문화재 복원 전문가와 함께 <미인도>의 복원 작업도 진행해 보았다.

신윤복, 그 쓸쓸한 뒷모습

시대가 변했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조선은 문화적 암흑기를 맞는다. 정치는 세도정치로 흘러갔고 문화예술은 급격히 쇠퇴해 갔다. 잠시 꽃피던 문화의 르네상스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즈음 신윤복도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가 사라져 간 빈자리에는 조선을 흔들었던 그의 작품들이 남아 신윤복, 그를 위대한 화인으로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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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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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신윤복), 박신양 (김홍도) 주연의 "바람의 화원"을 강추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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