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만나려는 시도
본문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2006년 10월 6년 전에 고등학교 동창회 웹싸이트에 실었던 이야기들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아직 새길교회가 시작되기 전에 신학교에 있었던 시절 동창들은 제게 왜 목사가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목사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궁금해 했는지도 모릅니다. 미리 말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저 저의 어린 시절들을 돌아보았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무척 개인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들을 동창들말고 제가 사랑하는 몇 친구들에게 보낸 일이 있습니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여러분하고도 나누려고 합니다.
이곳 웹사이트가 요즈음 너무 조용한 것 같기도 하고
나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도 같고, 그래야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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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신 혹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건 굿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 집은 할머니가 물려주신 대감상자라는 것이 벽의 모셔 있었고 일년에 두번은 고정적으로 굿을 했습니다.
달달이 단골집 할머니가 와서 고사를 지낸 것은 물론이고
제가 6살 정도에 살던 집은 5층 건물로 2층에 당구장이 있었습니다.
건물을 청소해 주던 총각 아저씨가 있었는데 무슨 사연이었는지는 몰라도 혁대로 당구장 화장실 문을 묶고 그 안에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 저는 그 일을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중고등 학생땐가 굿을 하는데 무당이 엄마한테 사모님 제가 몇년전에 당구장에서 자살한 아무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물론 기억도 못하고 있었는데, 엄마도 잊고 있는 그일을 그 무당이 알리가 없는데. . .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래 뭐가 있긴 있나 보다 . . .
굿을 하면 식구들이 무당 옷을 입고 춤을 추게 합니다. 신이 내리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지요.
저희 엄마는 맨달로 작두를 타셨고,
이모는 춤을 추다 차려 놓은 음식이 마음에 안든다면서 굿상을 다 뒤짚은 일이 있습니다.
엄마는 빌면서 다음 번에 더 정성을 들여 상을 차리겠다고 절을 수없이 해서 이모의 화난 신기를 가라 앉히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오빠가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무당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데 정말로 신이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뭐가 있기는 있나보다 . . . 그때 저도 춤을 춰보지 못한게 지금도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제 나름대로 신을 만나기 위한 시도를 한적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 교회를 들어간 것 같은데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했던 것이 아마도 부흥회였던 것 같습니다. 호기심에 앞으로 갔었는데 제가 기대했던 신의 경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인지 성당인지 구분도 하지 못했던 청소년 시절, 성당엘 간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있으니 예복을 입은 분이 사람들 입에 뭔가를 넣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뭔가 경험해 보고 싶어서 앞으로 나가 무릅을 꿇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제게 무어라고 물으신후 주시지 않고 다음 분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성만찬 시간에 영성체를 주는 자리였을 것이고
그 신부님은 제게 영세(개신교의 세례)를 받았냐고 물으셨을 것입니다.
오래된 일이라 어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무안하고 챙피했던 기억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신을 만나려고 했던 저의 첫시도들은 이렇게 챙피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경험은 제게 사람들이 만든 제도나 관습이 하나님을 옹졸하고 권위주의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아이들도,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도, 타 종교인도,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새길교회의 성만찬을 좋아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누구라도 환영하고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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