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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사람들 -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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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사람들 - 법정
그리 많지도 않은 책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책에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자꾸만 쌓이는 부피를 치다꺼리하다 보면 정말 짐스럽게 느껴진다. 지난 가을, 방을 수리하는 김에 5백여 권이나 되는 책을 친구들의 서가로 흩어버린 까닭도 그 부피 때문이었다. 근래 책이 탐탁치 않게 느껴지는 둘째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이 더러는 시시콜콜한 소음으로 들리어 내 안에서 우러나오려는 생생한 목소리와 맑은 사유(思惟)의 길을 가로막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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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그토록 많은 분량의 정보와 지식이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나는 적잖은 회의를 느낀다. 예전의 선비들은 아는 것만큼 행동하려고 했었다. 지(知)와 행(行)의 일치를 꾀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닦았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에 거슬리는 일에는 아예 발을 적시지 않았고, 의롭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에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거개의 학자나 지식인들은 지식과 행동 양식 간의 균형을 잃고 있으면서도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와 지식의 물결에만 급급히 매달리려고 한다. 입만 벌리면 누구의 학설이 어떻고 아무개의 이론이 어떻다고 할 뿐, 자신의 말이나 창의력은 일깨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듯 자기 체험이 없이 밖에서 얻어 들은 공허한 지식에는 아무래도 신용이 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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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행각하던 길에 날씨가 궂어 남도(南道)의 한 포교당에서 며칠을 묵고 있을 때였다. 그 절 주지 스님은 노령인데도 새벽 예불이 끝나면 자기 방에 돌아가 '원각경(圓覺經)'을 독송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있었다. 그 때 들은 몇 구절은 아직도 기억의 귓전에 쟁쟁하게 묻어 있다. "心淸淨故로 見魔가 淸淨하고 見淸淨故로 眼根이 淸淨하고 眼根淸淨고로 眼識이 淸淨하고...."(마음이 맑으므로 보이는 것마다 맑고, 보이는 것이 맑으므로 눈이 맑으며, 눈이 맑으므로 눈의 작용이 맑다는 뜻이다.).

노장님은 몇십 년째 '원각경'을 독송한다고 했었다. 낭랑한 독경 소리를 객실에 앉아 들을 때 아무렇게나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는 독송의 일과에 이변이 생겼다. 갑자기 독경 소리가 멈추더니 "이놈, 이 버릇없는 이 고얀 놈 같으니...". 하는 노장님의 노기에 섞이어 "이놈의 노장, 눈을 떠!"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객실에까지 크게 들려 왔다. 무슨 일인가 해서 급히 주지실로 가 보았더니, 그 전날 새로 온 젊은 객승이 주지 노장과 마주 앉아 서로 고함을 치고 있었다. 노장님은 화가 잔뜩 나 어쩔 바를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경전을 낯선 나그네는 한 손에 말아 쥔 채 웃음기마저 띠면서 노장의 이마를 톡톡 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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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님은 오랜 세월 그저 경을 읽고 있을 따름이지 그 경전의 내용대로 살 줄은 몰랐다. 마음의 맑음을 읿으로는 줄줄 외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마음을 맑힐 줄을 몰랐던 것이다. 젊은 선승(禪僧)은 지묵(紙墨)의 경전에 얽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장을 풀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노장의 마음 속에 있는 노장 자신의 경전을 읽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장은 지묵의 경전에만 팔려 경전으로 머리를 치던 그 뜻을 끝내 알아채지 못하고 화만 내었다. 책에 가려 자신의 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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