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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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를 심다 / 류시화
이 아침,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 시장을 지나가는데 한 노인이
철 늦은 백매화 묘목을 팔고 있었다. 묘목이라지만 제법 자란 나무였다.
곧 꽃망울이 터질 듯 가지마다 어린 싹들이 돋아나 있었다.
봄의 전령 매화를 감상하려고 해마다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겨울철을 주로 인도와 네팔 등지에서 보내는 까닭에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만 제주도에서 두 해를 살면서는 어느 겨울엔가 분분히 내리는 눈발 속에
하얗게 피어난 매화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 적이 있었다.
그런 기억도 있고 해서 그 백매화를 집에 갖다 심기로 마음먹고 흥정을 시작했다.
이미 철도 지나선지 값은 쌌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매화를 잘 키울 수 있느냐는
내 물음에 묘목 파는 노인이 뜻밖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수십년째 키워 왔기 때문에 매화에 대해 잘 알지만,
무슨 수로 그 지식을 전부 내 머릿속에 옮겨 심느냐는 것이었다. 매화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길은 앞으로 적어도 십 년 이상 매화를 키워 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설명을 듣는다 해도 자신이 직접 매화 한 그루를 키워 봄만
못하다고 노인은 단정지었다. 성깔이 있어 보이고 한쪽 눈마저
희뿌여니 먼 듯한 사람이었지만 이 아침, 그는 내게 좋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 가르침을 매화 묘목에 묶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매화를 다 심고 났을 때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운명이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삶에는 행복과 불행이 있고 그 둘은 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부처나 예수 같은 사람도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늘
행복했다면 방법이 무엇이냐고 그는 물었다.
그밖에도 그는 진리와 깨달음에 대해, 진정한 도에 대해, 명상법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내가 묵묵부답 딴전을 피우며 앉아 있자 그는 초조해 하다가 가버렸다.
처음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인디언들로부터
‘너무 많이 물어봐’라는 이름을 얻었었다. 그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인디언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이름이 무엇인가에서부터 부족의 명칭은
무엇이고 어디서 원래 살았는가, 백인들한테 땅을 빼앗기고도 행복한가,
즐겨 부르는 인디언 노래는 무엇이며 인생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마치 그곳을 취재하러 간 풋내기 기자처럼 눈만 뜨면 질문을 퍼부었다.
그렇게 해서 인디언 어른들이 내게 붙여준 이름이 ‘투 마치 퀘스천Too Much Question’,
곧 ‘너무 많이 물어봐’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일깨워 주었다.
질문을 해서 대답을 들었다고 그 대상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대답은 쉽게 얻긴
하지만 손바닥 위의 이슬처럼 금방 사라져 버린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얻은 것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들소처럼 묵직하고 대지처럼 영원하다.
그들은 말했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그를 오래
만나 보면 알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앎만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문명인들은 너무 학교 교육에만 의존해 살아왔기 때문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답을 들으면 그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말했다.
인도를 여행할 때도 그것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 인도에
도착해서 나는 끈이 달린 볼펜을 목에 걸고 다녔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과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영감들을 하나라도 더 기록해 뒀다가 나중에 책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기차와 버스에서 만난 인도인들은 당연히 내 목에 걸린 그 ‘이상한 물건’에
뜨거운 관심을 가졌다. 볼펜이라고 말해 주자, 그들은 도대체 왜 볼펜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냐고 더 궁금해 했다. 나는 작가이며,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곧바로 수첩에 적어 놓아야 잊어 먹지 않는 것이라고 자랑하듯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경험한 것이라면
굳이 메모해 놓지 않아도 잊어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영혼 속에 영원히 새겨질
산 경험이 아니라면 글로 적을 가치도 없다. 머릿속에 한 순간 스쳐지나가고 마는
생각들을 붙잡아 글로 쓰려고 한다면 그것이 어찌 위대한 작품이냐는
것이었다.
너무도 멋진 말이라서 잊어 버리기 전에 얼른 수첩에 적어 두었지만,
사실 그것이 준 충격은 그들의 말대로 내 영혼 속에 새겨졌다.
그 이후로 나는 순간의 생각이나 기발한 영감에 매달리기보다는, 진정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거리의 현자들로부터 배운 훌륭한 가르침의 결과였다.
인도의 영적 스승 크리슈나무르티가 유명한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존 화이트헤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서 화이트헤드가 아름다움이 무엇이냐고 묻자,
크리슈나무르티는 먼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을 보세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화이트헤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철학적으로 아름다움을 설명해 줄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크리슈나무르티는 지적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럴듯한 해석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느낌이라고.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진정한 경험과
느낌이지 철학적인 해석이 아니라고.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마음 속의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주어질 순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일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그대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까.’
남쪽 지방에 매화가 만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한 달이 지났고 내가 사는
동네에도 이미 매화가 피었다가 지고 있지만, 오늘 아침 나는 거름과
흙을 가져다가 매화 한 그루를 심었다.
고대 산스크리트어에선 인간을 ‘둘라밤‘이라 부른다.
그것은 ‘매우 얻기 힘든 기회’라는 뜻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이 드문
기회를 얻었으니 내게 주어진 것은 삶을 경험하고 느끼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다. 예로부터 늙은 매화를 제일로 쳤지 않은가. 특히 줄기가 구불구불
뒤틀리고 눈비에 오래 견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나무 둥치라야 매화로서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했지 않은가.
Joanne Shenandoah / Prophec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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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명님의 댓글
황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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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멋 있네요.
그저 살아내며 이해 하는 삶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