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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브람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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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브람스’를

[진회숙 칼럼]

   선배 슈만의 아내를 짝사랑한 남자  그녀만 보며 평생 독신으로 산 남자

   가볍지 않은 사랑, 브람스를 아시나요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보면서 즐기는 클래식 감상실’  저자  입력 : 2007.10.0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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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든 요즘,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은 브람스에 빠져들고 있다. 내가 음악평론가로 등단한 지도 햇수로 20년. 지난봄부터 서울시향에서 주최하는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의 강의를 맡고 있는데, 올해 서울시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콘서트가 정명훈의 ‘브람스 스페셜’이다 보니 강의에서도 자연스럽게 브람스 음악을 소개할 기회가 많아졌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브람스 음악을 열심히 집중해서 듣는 동안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브람스의 매력을 새록새록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 요즘 브람스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물론 나는 바흐와 모차르트를 브람스 이상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이들은 경이와 존경의 대상이지 연모의 대상은 아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나누기에는 두 천재가 지닌 무게가 너무 버겁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사나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사나이’는 자기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과묵함과 세상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진중함,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내는 인내심, 자기 욕심보다 상대방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정신적 성숙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나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런 진짜 사나이의 덕목을 읽곤 한다.

    젊었을 때는 사실 귀에 착 달라붙는 쇼팽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로맨틱하고 멜랑콜리한 멜로디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감성의 끝을 살살 간지럽혀주거나 아니면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짓이겨주는 이런 음악에 비해 브람스의 음악은 너무 진지하고 내성적이어서 듣기에 부담스러웠다. 얄팍한 내 귀가 아주 오랫동안 이 진짜 사나이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브람스보다는 역시 베토벤이 편했다. 베토벤은 매우 웅변적인 사람이었다. 브람스와는 달리 음악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분명하게, 직설적으로 했다. 그의 꿈과 이상은 지극히 높고 위대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분노도 그만큼 깊었다. 환희를 노래할 때나분노를 토해낼 때나 그의 가슴은 늘 에너지로 충만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충만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그것은 젊은 나에게, 그리고 그 후 나이를 먹어 세상사에 지친 나에게 어려움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주었다.

    베토벤은 사랑도 아마 직설법으로 했을 것이다. 한 여인을 몰래 마음속에 품고 일생 동안 혼자서 짝사랑하는 것은 베토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얘기하고,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는 것이 더 베토벤답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창문 밖으로 가구들을 던지며 불같이 화를 냈던 것처럼.

    베토벤과는 달리 브람스는 보다 내밀하고 정신적인 사랑을 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브람스는 선배 작곡가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다.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홀로 남은 클라라의 곁을 지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유행가 ‘뜨거운 안녕’의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남자답게’ 지켜주었던 브람스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평생 동안 한 여자만 사랑한 남자. 이런 남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 나를 비롯한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의 꿈이다. 이런 이야기만으로도 브람스는 여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음악은 쇼팽이나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보다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왜 그럴까?

    브람스는 베토벤 못지않은 열정, 쇼팽 못지않은 로맨스, 차이코프스키 못지않은 비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너무 진지하고 내면적이어서 쉽게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매우 지적으로 처리했다. 그저 효과만을 위해 무의미한 음을 남발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으며, 감정의 표피를 건드리기 위해 달콤한 멜로디를 쓰지도 않았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제목 같은 것도 붙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 그 자체에 승부를 걸었다.
  • 요즘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자주 듣는다. 이 곡의 1악장 도입부는 마치 스산한 가을바람 같다. 두 음을 레가토로 연결해 놓은 단순한 모티브의 반복 속에 가을바람 같은 스산한 고독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 고독은 얄팍한 사춘기 소녀의 고독이나 청승맞은 여인의 고독이 아니라 보다 묵직한, 보다 내밀한 남자의 고독이다.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진짜 사나이의 고독이다.

    쇼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베토벤을 거쳐 나의 남성 편력기는 브람스에게로 넘어갔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보니 자연스럽게 브람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의 진가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시기는 인생을 사계절로 치자면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은 안온함 저편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느낀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이 가을에 누군가에게 묻는다. 브람스를 아시나요?
Brahms / Sonata for Clarinet and Piano No. 1 in F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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