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 중생: 새로운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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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원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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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수연, 박필 두 발표자님들 참 잘했습니다. “중생”과 “하나님의 나라”—다소 큼지막한 토픽으로 인해 많은 논의가 있었고 두 분이 제시한 “생각해 볼 것” 중 다루지 못한 질문에 대해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한 중생을 체험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한수연) “하나님 나라 구현에 나는 무엇으로 참여할 수 있는가?” (박필) 우리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행동윤리를 묻는다면 (제가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 놓고)… 기독교의 근본적인 생각(root image)은 창조와 재창조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혹은 보그의 말로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창조-타락-심판-구원의 도식에 해당) 창조란 생명을 주는 행위이며, 이것이 인간이 생각해내는 신의 영역/역할입니다. 또한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소명이기도 합니다 (땅을 다스리라는 말의 의미) 그렇다면, 인간의 행위 중 창조적-재창조적인 삶--곧 생명을 부어넣는 일--과 상반되는 행위는 일단 “중생”과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어떤 의미로든—문자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우리들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하고, 비판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단답식으로 간단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애니 코멘트?
desertgardener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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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재 창조 -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봅니다.
Ellen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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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for your support. It means a lot to a middle aged woman who hadn't done this close to 3 decades.
해강이 이뿐이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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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경험한 뜨거운 드라마틱한 중생(?)의 체험은 대학때 Dominican Republic 이라는 곳에서였습니다.
2000년전에 죽은 유대인 예수가 정말 내 죄를 위해 죽었을까? 나란 한국사람을 알기나 할까? 하는 질문들이 있었을 때였는데 대학때 우연치않게 Orphanage Outreach라는 기회로 미국전역에 있는 대학생들이 50명정도가 모여서 간 종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community service 단체활동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피부색도 다르고 다른 언어를 쓰는 아마디아보다는 조금 큰 사내아이가 신발도 없이 아랫도리도 안 입고 걸어다니다가는 제 앞에 와 서서 저를 안으라고 하는데, 제가 그 아이를 안는 그 순간에 그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에 저도 놀라서 얼굴을 확 돌리다가 저도 또 놀라서 그 아이의 큰 눈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그러면서 "아, 나도 somehow 이 아이가 입고 먹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그런 큰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어요.
는 아직도 그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고 또 제가 변호하는 아이들의 눈에서 그아이의 눈을 봅니다. (가끔 저의 피를 끓게하는 원동력) 하나님 나라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와 똑같이 학교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이며 또 주말엔 교회에 있는 어린친구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로운일에 압장서는 사람들이 되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데 압장서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생각은 원대한데 잘 되고 있는건지.... 암튼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우리 새길교회라는 공동체가 있어서 너무 좋고 든든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라이프케어 센터의 일도 하나님나라 구현에 너무나 막대한 책임과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너무나 유니크한 그러면서 창조와 재 창조가 계속해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우리의 커뮤니티에 또 2세대들에게..
아무래도 저희들에게 더 큰 일들을 하라고 그런 voice 가 들리는 것 같아요. (metaphorically)...
요즘 할 일이 너무 많음을 그런데 다 할 수 없음을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